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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09) 소악루·양천 고성 품은 서울 강서구 '궁산근린공원'

28일 오후 시민들이 궁산근린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는 '궁산근린공원'이 자리해 있다. 공원은 한강변에 솟은 해발 75.8m의 야트막한 봉우리인 궁산에 조성됐다.

 

서울역사편찬원이 펴낸 '서울의 산'에 따르면, 과거 궁산의 이름은 파산, 성산, 관산, 진산 등으로 다양했다. 파산은 삼국시대에 주변의 땅이름인 제차파의에서 유래했고. 과거 이곳에 성이 있어 성산으로도 불렸다. 진산은 양천고을의 관방설비가 돼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한강을 지키는 빗장 역할을 했던 산이라 해 빗장 '관'(關)자를 붙여 관산으로 일컫기도 했다. 현재 표준 명칭인 궁산은 양천향교가 있어 궁(宮)으로 표시하던 것에서 연유했다.

 

궁산의 북쪽에는 안양천이 흘러 한강과 만난다. 강을 사이에 두고 궁산근린공원 맞은편에는 행주산성이 위치해 있다. 임진왜란 때 김포·통진·양천·강화·인천 등지의 의병들이 궁산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한강을 건너 권율장군을 도와 행주대첩에 참가해 승리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소악루' 오르면 한강과 안산·대덕산 전경 한눈에

 

이달 28일 오후 한 시민이 궁산근린공원 내 소악루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미세먼지 없이 쾌청한 하늘이 푸른 빛을 뽐낸 지난 28일 궁산근린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하차해 2번 출구로 나와 마곡대교 방향으로 618m(약 10분 소요)를 걸었다. 손가락 두마디 크기의 연두색 나뭇잎이 이제 막 솟아나기 시작한 마가목이 공원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마가목이라는 이름은 봄에 돋아나는 새순이 말의 이빨처럼 생겨서 '마아목'(馬牙木)으로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봄을 맞아 새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무들을 구경하며 '소악루'로 향했다.

 

28일 오후 소악루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덕동 일대를 바라봤다./ 김현정 기자

소악루는 조선 영조 때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가 벼슬을 버리고 악양루 옛터에 지은 누각이다. 중국동정호의 악양루 경치와 버금가는 곳이라 해 소악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이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한눈에 보이고 탑산, 선유봉 및 드넓은 한강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진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서울역사편찬원의 자료에 의하면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은 1740년 양천현감으로 부임해 당대 진경시의 태두 이병연과 그림과 시를 바꿔보자는 약조를 맺고 매일 소악루에 올라 아름다운 주변의 풍경을 그렸다. 겸재 정선이 이곳 현령으로 있을 적에 그린 산수화 '경교명승첩'에서 당시의 경관을 볼 수 있다.

 

누각의 원위치는 '여지도서', '양천군읍지'와 정선이 그린 소악루, 소악후월 등의 그림으로 짐작해 볼 때 가양동 산6-4(일명 세숫대바위) 근처로 추정되나, 강서구는 주변의 변화가 극심해 한강변 조망을 고려해 1994년 현 위치에 소악루를 신축했다.

 

가양2동 주민 최모 씨는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명당이라 그런지 확실히 기가 다르다"며 "경기도에 살다가 이 동네로 이사왔는데 사업도 잘 되고 아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한강 어귀 지키던 양천 고성

 

이달 28일 오후 양천고성지를 찾았다./ 김현정 기자

궁산 정상에 오르면 과거 이 자리에 양천 고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푯말을 볼 수 있다. 양천 고성지는 조선시대 양천현의 주산인 궁산에 있는 테뫼식 산성 터다. 양천 고성은 궁산 정상부에 있는 둘레 200m 정도의 평지를 둘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길이는 218m이며, 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은 토석 혼축성으로 축조됐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서울의 산'에서 "원래 이곳은 고구려 국경으로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과 더불어 한강 하구를 지키던 요새 중 하나였다"며 "일제 때에는 김포 군용비행장 개설공사로 일본군이 주둔했고,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에 이어 국군이 계속 주둔했던 관계로 궁산 정상 부근의 양천 고성 원형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천 고성에서는 옛 성터의 흔적인 적심적과 그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재 등도 발견됐다"며 "지금은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석축과 겨우 몇 십미터 정도 되는 성벽 흔적이 남아 있어 석성인지 아닌지 얼핏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고 했다.

 

양천 고성지 문화재 발굴 조사 결과 성벽 구간에서 초축 및 수·개축 성벽과 후축으로 추정되는 석렬이 확인됐다고 구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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