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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제약/의료/건강

[다시만난 巨人]사람을 위한 의료 '주춧돌'을 놓다..일송 윤덕선 박사

잊혀진 거인(巨人)들이 있다. 60, 70년대 일생을 바쳐 사회 곳곳에서 나라의 근간을 세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심은 헌신과 노력은 깊은 뿌리를 내리고 2021년의 대한민국을 흔들림없이 지켜내고 있다. 메트로신문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남겨진 자료를 바탕으로 이미 고인(故人)이 된 숨겨진 거인들을 다시 만난다. 온전히 국가와 민족을 위했던 그들의 사상과 정신을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되살려낸다. <편집자 주>

 

일송(一松) 윤덕선 박사

봄 기운이 되살아나던 지난 달 10일, 강원 춘천시 한림대학교에서 일송(一松) 윤덕선 박사의 25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 자리에 모여 일송이 꿈꾸던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일송은 거목(巨木)이었다."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은 그를 그렇게 기억했다.

 

윤대원 학교법인 일송학원 이사장은 "강인한 용기와 헌신 그리고 믿음, 정직으로부터 나오는 당당함,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에서 나오는 통찰력과 안목. 이것이 그를 '거목'으로 만들었다"며 "일송의 삶을 되짚어보며, 또 한 번 격변기 앞에 선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윤 박사는 학교법인 일송학원 설립자이자 대한민국 1세대 의사였다. 60년대부터 의료 시설이 취약했던 곳마다 최고의 시설을 갖춘 종합병원을 세우며 많은 생명을 살렸고, 한국 의료의 기반을 닦았다.

 

그는 일평생 나라와 국민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주춧돌'로 살기를 바랐다. 희생과 헌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의 사상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한림대학교의료원을 통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일송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21년, 많은 이들의 기억을 빌어 일송을 다시 만났다.

 

-주춧돌 사상은 언제 갖게 됐나.

 

"평양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일본어를 가르치던 일본인 교사 바바 마사오 선생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조선 사람은 땅에 묻힐 주춧돌 노릇은 하기 싫어하고 저마다 대들보 노릇만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따끔한 충고는 큰 깨달음이 됐다. 그 후 나는 '땅에 묻혀서 주춧돌이 되어라.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너는 뒷받침 해라'라는 태도로 살아왔다. 평생 명예나 권세를 탐하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 성심'이란 이름은 직접 지었나.

 

"1945년 고향인 평안도 용강에 '성심의원'을 처음 열었다. 아버지가 빌린 돈으로 일본인이 경영하던 여관을 인수해 문을 연 나의 첫 병원이었다. 성심은 '예수의 마음' 이라는 의미로 인간에 대한 예수의 무한한 사랑을 뜻한다. 성심의원을 운영하며 밤 11시, 12시에도 말을 타고 왕진을 다녔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30리 시골길 왕진을 다녀올 때면 무서움에 땀이 흠뻑 젖었고, 겨울엔 눈보라에 코와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한명이라도 더 고치기 위해 달렸던 그 시간들은 '성심'을 일깨워줬고, 그 마음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지난 1968년 6월 '필동성심병원(중앙대학교병원)'을 개원했다. 개인이 세운 국내 최초 민간 종합병원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일이었다. 이후 1971년 한림대의료원의 시작인 '한강성심병원(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을 열었다. 이후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역을 찾아 동산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춘천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 등을 세우며 국내 가장 많은 병원을 세운 의사로 꼽힌다.)

 

- 50대에 영등포에 첫 종합병원을 세웠다.

 

"당시 한강변 허허벌판 모래밭에 병원 건물을 짓겠다고 했을 때 많은 동료 의사들이 반대를 했다. 하지만 병원은 언제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찾아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영등포는 가난한 사람이 많고 의료 시설이 부족했다. 춘천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을 개원한 것도 수익을 위한 입지보다 의료 혜택이 부족한 지역을 일부러 찾아간 결과다. 1986년에는 국내 첫 화상치료센터를 열었다. 당시 화염병 시위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중증 화상 환자가 많았지만 병원들이 수익없는 화상치료를 외면하던 때였다. 화상환자들은 모두 우리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병원 왕'으로도 불리는데.

 

"'병원 재벌'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병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훌륭히 키우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다. 물론 환자를 열심히 치료해서 환자가 몰리면 돈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의술을 파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병원은 결코 사기업이 될 수도 없고 사유재산이 될 수도 없다. 이점에서 일반 개업의나 개인 진료소와 큰 차이가 있다. 병원은 국민의 것이고, 경영자는 병원이 이상적인 기능을 발휘하도록 돕는 관리자이지, 병원의 소유자는 아니다."

 

-무료 진료를 많이 했다.

 

"한강성심병원은 개원 초창기부터 월 2회씩 순회무료진료를 다녔다. 수해가 발생하면 그 지역으로 달려갔고 서울시와 협조해 봉천동에 '새마을보건진료센터'를 열어 무료 진료를 했다. 또 매년 수녀원에서 경영하는 시골 병원에 찾았고, 교수진들을 백령도, 연평도 등 낙후된 오지와 나병 요양원에도 자주 파견했다. 병원은 환자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고 환자의 괴로움과 슬픔을 깊이 공감하는 사랑이 넘치고 정이 흐르는 곳이어야 한다."

 

(한림대의료원은 지금까지 사회공헌과 환자중심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한림대학교의료원 산하 첫 병원인 한강성심병원이 설립된 이후 1972년부터 2018년까지 한림대학교의료원 산하 병원에서 무료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총 13만6000명에 이른다. 한림대학교의료원이 1995년부터 2018년까지 펼친 사회공헌 액수는 1086억원에 달한다.)

 

-60이 넘은 나이에 한림대학교를 세운 이유는.

 

"대학을 만들어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한림원은 동양에서 문장, 학술 등을 맡는 기관이었고 한림학사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최고의 학자, 문인을 의미했다. 나는 대학을 기능인 양성소가 아닌, 미래를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지성의 훈련소라고 생각했다. 대학은 탐구와 지적 활동이 살아 숨 쉬는 순수 전당이자 사회정의의 최고 보루다. 그런 빛나는 사업을 통해 정성껏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고 내 주변과 사회,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한 주춧돌을 놓고 싶었다.

 

-일송 100주년 기념사업 '디딤돌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많은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것이 항상 아쉬웠다. 한림대기술지주회사가 마련하는 창의공간에서 아이디어와 꿈을 지닌 학생, 연구기관, 벤처회사들이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동욱 한림대기술지주회사 대표가 주춧돌 정신을 이어 디딤돌을 놓고 있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우리가 쌓아온 무형·물질 가치를 기반으로 청년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돕고 궁극적으로 또 다른 주춧돌을 양성해 더 큰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한림대의료원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주춧돌도 놓고 있다. 지난 2019년 '마이티 한림 4.0'을 선포하고, 향후 10년, '데이터뱅크 기반의 맞춤형 정밀의학을 제공하는 스마트 의료기관'을 목표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서버,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로보틱 시스템 등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래의학의 모습은 어떤가.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AI, VR과 같은 기술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단지 기술만으로는 완벽한 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 의료의 가치는 한없는 인간애에 있다. 미래의학 역시 인간애를 기반한 인술을 통해서만이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의술은 단순 이익보단 공헌을 중심으로, 기업은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미래에도 변함이 없다."

 

-당신이 심은 소나무 한그루는 거목이 됐다. 일송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일송은 학생시절 은사였던 신원우 선생이 붙여주신 호(號)였다. 소나무는 해변가 바람이 세찬, 높은 바위에서 있는 것을 좋아한다. 온갖 풍랑을 수없이 맞아 뒤틀린 모습이 소나무의 참된 모습이다. 어떠한 파도도 소나무를 꺾어뜨리지 못한다. 소나무는 땅속에 깊이 곧바로 내려앉은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바람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깊은 뿌리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 심기가 매우 힘든 나무라고 한다. 나는 이 소나무의 기상을 어려움을 만날때마다 스스로 생각해 보고 다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의료진도 국민도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고통스러운 현재를 살고 있지만 소나무와 같은 기상으로 이것을 이겨 낼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지금 소나무를 스쳐지나가는 숱한 바람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 바람 소리가 반드시 이 땅에 훈훈한 봄바람이 되도록 변할 날이 있을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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