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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종합

[되살아난 서울] (85) 도심 속 비밀의 정원·· 조선 시대 별서(別墅) 자리한 '백사실계곡'

지난 8일 한 어르신이 백사실계곡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다./ 김현정 기자

 

별서조경(別墅造景)은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 싸움에 뛰어들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세우고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며 정원을 꾸미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별서는 한적한 장소에 외따로 만든 집을 뜻한다. 유희를 목적으로 지어진 별장과 달리 별서에선 농사를 짓는다.

 

이달 8일 한 시민이 반려견과 백사실계곡 일대를 산책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울 종로구 부암동 115번지 일대에 위치한 백석동천(白石洞天)은 조선 시대 도성 인근에 조성된 별서 관련 유적으로 사랑채, 안채 같은 건물지와 연못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동천(洞天)이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의미한다. 주변에 흰 돌이 많고 풍광이 아름답다고 해 백석동천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유적'은 2005년 사적 제462호로 등록됐다. 이후 2008년 사적에서 해제되고 명승 제36호로 지정됐다.

 

◆별서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난 8일 오후 백사실계곡을 찾았다./ 김현정 기자

 

지난 8일 백석동천이 있는 백사실계곡을 방문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로 빠져나와 1711번 버스를 타고 8개 정류장을 이동해 세검정초등학교에서 내렸다. 현통사 방향으로 6분(도보 430m)을 걸었더니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럭바위 위에 우뚝 솟은 자그마한 절 옆으로 난 물줄기를 따라 야트막한 산길로 들어서서 5분가량을 더 걸었더니 교과서에서만 봤던 '진경산수화'가 눈 앞에 펼쳐졌다.

 

이달 8일 백사실계곡을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휴면기를 끝낸 식물들은 칙칙한 갈색옷을 벗고 상큼한 초록 빛깔 새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었다. 산을 덮은 흰 눈은 계곡으로 흘러들어 잠에서 덜 깬 물방울들이 웅덩이에 고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물줄기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쉼 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백사실계곡을 찾은 구로구 주민 김모 씨는 "이 동네 사는 친구가 집 근처에 끝내주는 계곡이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길래 궁금해서 한번 와봤다"면서 "'서울에 뭔 계곡이 있냐'고 핀잔을 줬는데 진짜 도심 한복판에 계곡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이어 "서울에 30년 넘게 살면서 여기에 이제 처음 와본 게 한이 된다"면서 "그 옛날에 여기 경치가 빼어난 것을 알고 집 짓고 살던 사람들이 새삼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후 백사실계곡을 찾은 한 어르신이 나무에 기대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백사실계곡의 명칭은 과거 이곳에 별서를 짓고 살았던 조선 중기 문신 이항복(1556~1618)의 호인 '백사'(白沙)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이항복은 오성과 한음에 관한 설화로 잘 알려진 16세기 인물이다. '오성'은 오성부원군 이항복이고, '한음'은 한원부원군 이덕형이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당시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조선 중기 명신들로, 5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돈독한 우정을 나눈 둘에 대한 일화가 오늘날 '오성과 한음 설화'로 내려오고 있다.

 

◆겨울잠 깬 개구리 소리 들리는 언택트 관광지

 

이달 8일 오후 백사실계곡을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차가운 계곡물을 맞고 깊은 겨울잠에서 깬 옴개구리 우는 소리가 드넓은 숲에 울려 퍼졌다. 나무가 우거진 깊은 산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회색 바위가 위용을 뽐내며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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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시민들이 백사실계곡 일대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백석동천(5만861㎡)에는 남북을 중심으로 육각정자와 연못이 있다. 약 3.78m의 높은 대지 위엔 사랑채와 안채가 나뉘어 자리해 있다. 현재 사랑채와 정자 등은 건물터 기초만 남아 있고, 담장과 석축은 일부만 존재한다.

 

문화재청은 "백석동천은 사랑채 같은 건물지와 연못, 각자바위가 잘 남아 있고 마을과의 거리감을 확보하고 있는 등 별서의 구성 요소를 두루 갖춘 격조 높은 조원(造園)의 면모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달 8일 오후 백석동천에서 만난 대학생 윤모 씨는 "서울시내 언택트 관광지를 검색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면서 "사람이 별로 없어 산을 오르다가 숨이 찰 때 마스크를 잠깐 벗고 쉴 수 있어서 좋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 놀러 오면 맨날 경복궁, 명동 이런 데만 데려갔는데 다음번엔 꼭 백사실계곡으로 안내할 것"이라며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오후 한 시민이 백사실계곡에서 팔 굽혀 펴기 운동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2년 11월 백석동천 별서 유적이 한때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소유였음을 입증하는 문헌자료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석동천은 과거 백석정, 백석실, 백사실 등으로 불렸다. 조선 말기 박규수의 '환재집'에 수록된 시에는 '백석정'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추사의 '완당전집 권9'(阮堂全集 券九)에 "선인 살던 백석정을 예전에 사들였다"는 내용과 주석에서 "나의 북서에 백석정 옛터가 있다" 같은 기록 등을 통해 추사가 터만 남은 백석정 부지를 매입해 건물을 새로 건립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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