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외부감사인의 고강도 회계감사를 앞두고 상장사에 비상이 걸렸다. 해당 회사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 역시 마찬가지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로 회계법인을 교체한 상황에서 감사인의 '비적정 의견'이 대폭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이례 없는 주식시장 퇴출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면 이후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2016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의 원인으로 부실 감사가 지목되며 재발을 막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차기 감사 수임 건으로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회계법인의 '봐주기 감사'를 사전에 차단해 감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재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상장회사 감사인으로 등록된 회계법인은 39곳이며 여기에 추가로 4곳에 대한 등록심사를 진행 중이다.
감사인 지정제로 회계감사가 까다로워졌다는 정황은 수치로 증명된다. 감사인 지정제 법률 개정안이 2017년 국회를 통과한 직후 실시한 외부감사에서 적정의견을 받지 못한 상장법인은 33곳으로 전년(25곳)보다 32% 늘었다. 지난해는 43곳까지 증가했다. 주요 비적정 의견 사유는 감사인이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 증거를 입수하지 못한 경우 제시하는 '감사범위제한'과 '계속기업의 중요한 불확실성'으로 집계됐다.
◆회계법인, 상장사 고강도 감사
금감원은 지난해 말 2020년 외부감사인 지정회사를 선정해 회사와 회계법인에 각각 사전 통지했다. 주기적 지정대상 220개사와 직권 지정대상 635개사 등 총 855개사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많은 상장사가 입맛에 맞게 회계법인을 선임해 왔지만 이번을 마지막으로 내년 감사 대부분은 지정 회계법인에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회계법인은 이전보다 까다로운 감사를 할 수밖에 없다. 국내 한 회계법인 대표는 "안일하게 감사를 했다간 내년에 전기결산을 확인한 지정 회계사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회계법인 이미지엔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올해 감사 결과와 관계없이 해당 기업과 재계약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체될 회계법인으로부터 내년에 문책당할 수 있다는 부담감을 안게 됐다는 설명이다.
기업 사이에선 "회사의 자유 선임은 사실상 6년이 아니라 5년"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그만큼 상장사들로선 회계감사가 심각한 부담으로 다가오게 됐다. 관행처럼 넘어갔던 부분이 이번 감사에선 평가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 달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한 코스닥 상장사 재무팀 관계자는 "준비한 자료 외에도 추가적인 검증을 위해 다른 서류를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회계법인 측과 연구·개발(R&D) 비용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를 겪고 있다고 귀띔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을 갖춘 중소기업엔 빨간불이 켜졌다. 상장사 관계자는 "비적정 의견을 받는 코스닥 상장사가 꽤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감사를 받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내부 감사부서도 없을뿐더러 부족한 인력 때문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중소기업 회계역량 강화를 위해 '회계 투명성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회계감사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융당국 "회계 개혁 위한 건강한 성장통"
기업들의 반발에도 금융당국은 단호한 태도다. 엄격하고 투명한 외부감사가 시장에 자리 잡는 첫 단계라고 거듭 강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까다로운 외부감사로 비적정 의견을 받는 기업이 발생하는 것은 회계 개혁을 위한 첫 단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관행처럼 되풀이돼왔던 부실 감사를 뿌리 뽑는 과정에서의 성장통"이라며 "선의의 피해기업이 생기지 않도록 한국거래소 차원의 모니터링과 함께 정보 공유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목소리는 회계법인 쪽에도 터져 나왔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들과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정말 문제가 되는 부분이 아니라면 적정을 받기 위한 방향으로 유도를 했던 것이 관행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련의 사건으로 추락한 회계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측도 "기업들은 피곤해졌지만 감사품질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투자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결산 시즌에는 예상치 못한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경영 안정성이 미흡하거나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기업에 투자할 경우 투자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한편 교체된 회계법인과 이전 회계법인의 갈등을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한참 지난 감사조서를 가지고 사후적으로 문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