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가 상반기 실적 부진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정제마진 하락과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하반기 실적 전망 역시 어두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 정제마진은 1배럴당 6.7달러를 기록했다. 7월 셋째주보다는 소폭(0.7달러) 하락했지만 올해 초 1달러 수준의 정제마진과 비교하면 크게 상승한 셈이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정제마진은 1~4달러에서 움직였다. 정제마진이 하락하면서 올 상반기 국내 정유사들의 수익은 전년동기 대비 일제히 감소했다.
에쓰오일은 올해 상반기 매출이 11조41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799억원으로 72.6%나 감소했다. 2분기에는 영업손실 905억원을 내며 적자전환했다.
현대오일뱅크 상반기 매출은 10조46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552억원으로 57.2% 줄었다.
SK이노베이션은 상반기 매출 25조9522억원, 영업이익 828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47%나 줄었다.
GS는 상반기 매출액 8조926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 1조5억원을 기록하며 9.6% 감소했다. GS칼텍스의 상반기 매출액은 15조62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 줄었으며 영업이익은 4629억원으로 47% 감소했다.
정유회사는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등유, 경유 등 경질유 제품을 생산해 수익을 낸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료인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비용을 뺀 금액이다. 정유회사 실적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정제마진이 1배럴당 4~5달러를 넘겨야 정유사는 이익을 낼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앉아서 손해만 봐야 하는 구조다.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은 웃돌고 있지만, 하반기 중국 등 석유업체들의 신규 설비 가동이 예정되어 있어 추가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중국 헝리석유화학이 최근 일평균 40만배럴의 설비를 가동한 데 이어 5월부터 저장석유화학도 일평균 40만 배럴의 시험 가동을 시작했다. 6월 말에서 7월 초 브루나이 홍이도 일평균 17만 배럴의 설비를,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도 일평균 22만배럴의 정유설비 시험가동에 나섰다. 이들 설비는 9월에서 10월 양산에 돌입할 전망이다.
또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로 중국 경제 회복에 암운이 드리웠을 뿐 아니라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 정유사들의 부담이 늘어난 것을 근거로 하반기 실적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금물이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는 호재로 꼽힌다. 이는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기존 3.5% 이하에서 0.5% 이하로 낮추는 것으로, 글로벌 선사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저유황유 사용을 테스트하고 있다.
황 함유량이 0.1%인 저유황유는 고유황유보다 40~50% 비싸다. 규제가 시행되면 두 제품의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돼 저유황유를 생산하는 정유사의 수익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유4사는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VRDS) ▲솔벤트 디 아스팔딩(SDA) ▲잔사유 고도화 설비(RUC) ▲올레핀 다운스트림 컴플렉스(ODC) 등 설비 구축을 통한 수익성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의 등락 여부는 현재로서는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설비투자에 주력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라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