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운동 거세질수록 감정 응수보단 외교적 해법에 '무게'
지금 우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반일 감정이 드높다. 지난 4일 일본이 단행한 반도체 핵심 부품에 대한 우리나라 수출규제 조치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아직까지 일본과 풀지 못한 과거사인 강제징용 배상과 맞물려 있다. 이후 국내 소비자와 판매자는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단결했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루어진 'NO' 캠페인은 반일 분위기를 타고 온·오프라인에 확산된 지 오래다. 정치권도 반일 관련 여론전에 치열하게 가담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상호 경제를 위협하는 무역 갈등은 감정적인 응수가 아닌 외교적 해법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생 시위부터 분신··1천여명 촛불집회까지
반일 운동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그 강도가 더 거세지고 있다. 대학생들까지 나서 반일 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노인도 나왔다. 이화여대 학생회는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화인은 일제강점기 피해자들과 연대한다"며 "아베 정권은 한일 양국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경제보복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이후 19일 새벽 3시24분께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까지 차를 끌고 와 불을 낸 김모씨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김씨는 대사관 앞 인도에 승합차를 세운 뒤 차 안에서 스스로 불을 붙였다. 이후 불은 10분 만에 진압됐지만 김씨는 결국 화상성 쇼크와 호흡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이 같이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20일 서울 옛 일본대사관 인근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오후 내 일본 규탄 집회가 열렸다. 민중공동행동 등 100여개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0여명은 이날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경제보복 아베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일본의 경제보복과 과거사 왜곡을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여권 반일 감정 호소 '고조'
이 같은 전국민적 반일 분위기 속에 정치권도 한 몫하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징용판결 관련 일본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데 청와대·여권의 최전방에 서고 있다. 그는 주말인 20~21일에만 9개의 페이스북 글을 올리며 국민 결집을 노렸다. 그의 글이 강해질수록 보수야당과 대립각도 선명해졌다.
조 수석은 21일 문재인 정부가 고려시대 서희, 조선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의 역할을 모두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물론 제일 좋은 것은 WTO(세계무역기구) 판정 나기 전에, 양국이 외교적으로 신속한 타결을 이루는 것이고 당연히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법적·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페이스북을 통해 연일 반일 여론전에 나선 것을 두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반일 감정 조장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죽창가', '이적', '친일파'에 이어 이제는 '전쟁'이란 표현까지 페북에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복 외교로는 어떠한 갈등도 해결할 수 없다. 소위 '지식인'이 이런 진리를 모른다는 것이 더 우스운 일"이라며 "편가르기로 얻은 표심으로는 대한민국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외교적 해법으로 풀어야"… 전문가들 '감정 자제' 호소
이 같은 불매운동을 우려하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으로 세계 경제 3위의 대국과의 무역분쟁 조짐을 보다 격화시킨다면 우리 경제가 입는 손실이 막대할 것"이라며 "지난 60년간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해외에 수출하는 무역구조를 갖춰왔는데 변수가 닥친다면 국내 GDP 성장에 정체가 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지난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진행한 '일본 경제제재의 영향과 해법 긴급세미나'에서 "중국에서 한국산 불매운동이 일어나 롯데마트가 전면 철수했는데 그 결과 중국인 2만6500명이 실직했지 않느냐"며 "세계의 경제산업은 국가마다 가치사슬로 연결돼 있기에 국내 불매운동이 자국민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은 최선책보다는 최후의 방책에 가깝다는 얘기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한일 양국에서 정치적 강경발언이 계속 나오고, 국민들은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어 완충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며 "한일 갈등이 점차 커져 일본이 금융제재를 가하거나 다른 측면에서 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한국이 겪는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