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61) 미래에셋 회장은 국내에서 '글로벌 금융 파이오니아(개척자)'로 손꼽힌다. 그는 '아직 때가 아니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3년 홍콩 진출을 시작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세계 속에서 어깨를 겨루며 경쟁하고 있는 도전자다.
미래에셋은 지난 1997년 7월 2일 닻을 올렸다. 올해 창립 22주년을 맞은 미래에셋은 아시아의 홍콩, 중국 등은 물론 영국, 미국 등 선진자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박 회장의 뚝심 있는 추진력으로 미래에셋은 글로벌 14개국에서 약 40개의 법인 및 사무소를 보유한 글로벌 금융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 22살 미래에셋, 글로벌 금융기업으로 '우뚝'
대한민국 금융 기업이 국내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한계 속에서 박 회장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글로벌 미래에셋'을 기치로 하나씩 이정표를 세워왔다.
박 회장은 2003년 국내 최초로 홍콩에 해외운용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하며 해외에 발을 내디뎠으며, 인도·영국·미국·브라질 법인도 출범시켰다. 또 캐나다와 호주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전문 자산운용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에도 미국 ETF 운용사인 '글로벌 X'를 인수한 후 이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 베트남에서 베트남투자공사와 합작법인을 설립, 국내 최초로 중국 현지 사모펀드운용사로 인가를 받는 성과를 일궈냈다. 이는 아시아 금융회사 중 최초의 기록으로 화제를 모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 중이던 지난해 박 회장은 해외 사업에 더 의욕을 보이며 금융가를 발칵 뒤집어 놓는 선언을 했다. 자신은 "미래에셋대우 회장직에서 물러나 글로벌 경영에만 집중하겠다"며 지난해 5월 회장직을 내려놓고 국내 사업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다. 박 회장의 결정은 실로 놀라웠지만 올해 초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 결정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박 회장은 "글로벌 비즈니스에만 전념하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글로벌 X 인수 이후 가장 잘한 결정"이라며 "전략적 사고를 갖고 좋은 회사를 만들어 후대 경영인에게 글로벌 미래에셋을 물려줄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자평했다.
박 회장의 분석은 적중했다. 미래에셋그룹이 1분기 해외에서 벌어들인 전체 해외 법인의 세전 이익이 700억원 규모이다. 2017년 연간 703억원, 지난해 연간 1554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1분기에만 2017년 연간 이익에 육박한 수준으로, 미래에셋의 해외 사업을 독보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박 회장은 현재 미래에셋대우 홍콩법인 글로벌 회장과 글로벌경영전략고문을 맡고 있는데, 그가 진두지휘하는 홍콩법인의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홍콩법인이 올해 초 국내 증권사 최초로 글로벌 유니콘 기업의 해외 상장에 공동주관사로 참여한 것.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중국 마오얀 엔터테이먼트의 해외 상장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 27살에 자문사 세우고 증권업 뛰어 들어
박 회장은 광주제일고를 거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 경영대학원 고위경영자 과정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AMP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97년 미래에셋을 설립한 후 22년 동안 '금융' 한 길을 걸어왔다.
그가 증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 '자본시장의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는 말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레 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부모님께 받은 생활비로 증권투자를 시작했고, 85년 27살의 나이에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 자문회사인 내외증권연구소를 설립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로서 갖는 한계를 절감하며 결국 연구소 문을 닫고, 그는 86년 처음 동양증권에 입사한다. 이후 동원증권으로 옮기면서 32살의 나이에 을지로 중앙지점을 맡아 국내 최연소 지점장으로 발탁되는 기록을 세웠다. 또 그만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중앙지점을 전국 1등 점포로 키워냈다.
그는 당시 한 외국계 증권사에서 연봉 10억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금융에 대한 타고난 직관력을 바탕으로 97년 미래에셋을 창업했다. 미래에셋은 운용사 인허가의 어려움으로 벤처캐피탈에서 시작됐지만, 이듬해 규제 완화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할 수 있었다.
박 회장의 신화는 이때부터 본격화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한국 경제가 최대 위기를 맞았을 때 오히려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출시해 승부수를 띄웠다. 주변에서는 이 펀드가 실패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수 백 억원의 투자금을 모집하면서 미래에셋이 세계적인 금융그룹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박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같은 해 최초의 부동산 펀드와 사모투자펀드(PEF)를 내놓으며 한국 금융의 역사를 새로 써 나갔다.
박 회장은 금융그룹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며 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하고, 2005년에는 미래에셋생명도 출범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16년 말 대우증권을 인수해 통합 미래에셋대우로 출범,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증권사를 탄생시킨 것이다. 또 최근에는 PCA생명 인수를 통해 대형생보사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박 회장, 배당금 기부 9년째…
박 회장이 2010년부터 매년 배당금을 기부해온 것은 업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 올해에도 그는 흔쾌히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받은 배당금 16억원을 전액 기부한 것. 올해 배당금까지 합하면 박 회장이 기부한 총 금액은 232억원에 달한다.
박 회장은 평소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으며, 2008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배당금을 기부할 것을 약속했고, 이를 지켜오고 있다. 당시 편지에서 그는 "2010년부터 배당금 전액을 이 땅의 젊은이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혔던 것. 그의 기부금은 장학생 육성과 사회복지 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박 회장은 20주년 기념사에서 "사람을 키우고 기회를 주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재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는 2000년 75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하면서 장학 사업을 본격화했다. 미래에셋의 인재육성사업은 올해로 19년째로, 경제교육과 장학사업으로 이뤄진 인재육성 프로그램의 누적참가자는 벌써 26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박 회장의 글로벌 인재 투자는 업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땅의 젊은 금융 인재들이 세계로 흩어져 인적 네트워크를 갖는 것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래에셋은 국내 최대 규모의 장학 프로그램으로 해외 교환 장학생, 글로벌 투자전문가장학생을 비롯해 총 8578명의 학생을 선발해 지원해 왔다. 또 전국 지역아동센터 2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방학에 3박 4일 간 진행하는 미래에셋의 글로벌 문화체험단도 대표적인 글로벌 인재육성 사업으로 꼽힌다.
미래에셋 글로벌 문화체험단이 포즈를 취했다. /미래에셋그룹
또한 전국 아동복지시설 등을 통해 책이 필요한 청소년에게 도서를 지원하는 '희망듬뿍 도서지원' 사업도 대표적인 사회복지 사업으로, 복지시설 및 교사의 추천으로 1인당 12권씩, 지금까지 9194명에게 지원했다.
미래에셋은 청소년에게게 도서를 지원하는 희망듬뿍 도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
◆박 회장의 경고 "위기 가능성 대비하라"
박 회장이 지난 3월 미국 뉴욕에 머물던 중 사내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다. 그는 우선 해외 사업 확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박 회장은 "향후 글로벌 금융 상품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올해 일본에 진출하고, 중국과 인도의 비즈니스도 확대할 것"이라며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또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우리가 살아갈 나라, 우리 아이들과 그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나라"라고 했다.
박 회장은 하지만 올해는 월가에서 감돌고 있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는지 경고의 메시지를 함께 전했다. 그는 "우리는 10년 이상 된 글로벌 불 마켓(강세장)을 경험하고 있다"며 "여러 기대감도 있지만 '위기는 미소 띤 얼굴로 찾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다"고 당부했다. 이는 경제위기에 미리 대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지만 우리 경제당국이 명심해야할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메시지 처럼 그의 경고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