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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국방/외교

해군, 국내 첫 대형 이순신 동상 제작자에 감사패 전달

(사진 위부터) 이진수 옹(앞줄 왼쪽)이 박정일 해군정비창 금속직장장(앞줄 오른쪽)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다. 해군 군수사령부 장병들이 24일 경남 창원시 복원로터리 충무공 동상에서 충무공 탄신 474주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해군



우리나라 최초로 대형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제작한 이진수 옹(95)이 67년 만에 해군 정비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해군은 오는 28일 충무공 탄신 제474주년을 앞두고, 이진수 옹이 해군정비창 소속 장병과 군무원들로 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충무공 정신과 선배들의 업적을 기렸다고 24일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충무공 동상의 효시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국내에서 가장 앞선 주물 기술을 보유했던 해군 조함창(현 해군 정비창)이 1951년 11월 제작에 착수해 1952년 4월에 제막했다.

1949년 해군 조함창 주물 군속(현 군무원)으로 임용된 이 옹은 충무공동상 제작에 참여함은 물론, 20여년 간 조함창을 지킨 해군 정비분야의 산 증인이다.

그는 해군에 재직하는 동안 초대 해군 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에게 받은 표창장을 비롯해서 20개가 넘은 표창과 상장을 받았다.

이 옹이 제작에 참여한 충무공 동상은 한국전쟁(6.25)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해군 내부에서 국난극복의 염원을 담아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로 시작됐다.

전쟁 중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장병들과 국민들이 성금(놋그릇 등 기부품 포함)을 모았고,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대형 동상 제작이 가능했던 해군 조함창이 제작했다.

창원시 근대건조물 1호인 이 동상은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 제작보다 16년이 빨랐고, 높이 482cm, 너비 140cm로 제작 당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1952년 4월 13일 제막된 충무공 동상 앞에서 지내던 이 충무공 추모제가 1963년부터 문화축제인 군항제로 변경 시행돼 오늘날 전국 최대 규모의 지역문화관광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 옹은 "당시 국내에서 4m가 넘는 대형 동상을 만들 수 있는 곳은 해군 조함창 뿐이었다"면서 "나를 포함해서 10여명의 대원들이 4개월 이상 주형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동상을 만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우리 손으로 만든 충무공 동상이 진해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옹의 차남 이치관 주무관(6급,58)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25년째 해군 군수사 정비창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날 감사패를 전달한 정비창 박정일 금속직장장은 "이진수 옹을 비롯한 선배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건립한 충무공 동상은 해군 정비창의 자부심이자 해군의 자랑"이라며 "충무공 탄신일을 앞두고 선배들의 업적을 기억하고 따르고자 이렇게 찾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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