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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100주년] 윤희순·조신성·김경희,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

애국부인회 임원. 번호순으로 김영순 서기, 황에스더 총무, 이혜경 부회장, 신의경 서기, 장선희 재무부장, 이정숙 적십자부장, 백신영 결사대장, 김마리아 회장, 유인경 대구지부장./ 자료=독립기념관



"일본의 한일병합통치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참담하고 비통한 것인데, 그 코리아에서 어린 여학생들이 항일민족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너도 마음이 끌릴 것으로 안다"

인도 독립투쟁의 상징이자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가 식민정부에 의해 체포됐을 당시 자신의 어린 딸 인디라에게 보낸 옥중서신에는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선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이 나온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들 중 몇 명을 기억하고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항일 독립운동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김구(23.8%)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중근(22.8%), 유관순(11.1%), 윤봉길(9.6%), 안창호(5%)가 뒤를 이었다. 독립운동가를 대표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유관순 열사 외에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를 떠올린 이는 없었다.

이러한 국민인식을 대변하듯 2019년 기준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 1만5180명 중 여성은 357명으로 전체의 2.4% 밖에 되지 않는다.

1919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모진 고문과 폭력을 견디며 일제에 대항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 외에도 많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 지도자 '윤희순'

1895년(고종 32)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지방 유생들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윤희순 선생은 "비록 여자라 해도 나라를 구하는 데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여성들의 의병 활동을 독려했다.

윤희순은 '안사람의 의병가', '병정의 노래' 등 의병가를 지어 사기를 진작시키는 등 직·간접적으로 춘천 의병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후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2년 뒤 고종황제가 퇴위하자 정미의병이 봉기했다. 윤 선생은 여성의병단을 조직했다. 의병자금과 탄약, 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자 그는 향민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아 놋쇠와 구리를 사들였다. 무기와 탄환을 제조해 의병들에게 공급했다. 1911년 가족과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노학당을 설립해 항일 인재양성에 힘썼다.

◆친일파가 두려워한 애국계몽운동가 '조신성'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조신성은 3·1만세운동에 가담해 교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조 선생은 1920년 영원, 덕천, 맹산 지방에서 청년을 모아 중국 관전현의 항일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게 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 권총, 인쇄기 등을 사들여 맹산 선유봉 호랑이 굴에 감춰놓고 혁명적인 광복운동을 전개했다. 호랑이 굴에서 '사형선고문'을 인쇄해 일본 관헌과 친일파에게 보내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선고문을 받은 이들은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조 선생은 대한독립단 청년을 구하기 위해 불심검문하는 일본 순경을 방해했다. 그는 공무집행방해죄로 6개월 징역형을 받고 평양에서 옥살이를 했다.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우체부를 습격해 3000원을 빼앗아 임시정부로 보내기도 했다. 악질적인 일본인과 반민족적 친일배는 총살했다.

일본 앞잡이였던 한국인 순사를 설득시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한 일도 있었다. 한인 순사 나신택은 조 선생에게 '여자가 무슨 독립운동을 하느냐'고 빈정거렸다. 그는 "나는 여자로서 독립운동에 힘을 다 쏟고 있는데 그대는 남자로 일본 순사 노릇만 하느냐"고 나무라며 독립운동에 가담케 했다. 그의 말에 설득된 나신택은 예준기, 나병삼, 이운서와 영원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빼앗고 순사 박의창을 죽였다.

1927년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근우회가 조직됐다. 조 선생은 평양 근우회 지회장에 추대돼 민족주의 운동과 여성 해방 운동을 추진했다.

◆최초의 여성 독립운동단체, 송죽결사대

송죽결사대 일원인 황에스더 선생./ 이화여대



1913년 평양에서 여성독립운동단체 '송죽결사대'가 조직됐다. 송죽회는 평양 숭의여학교 교사 김경희가 황에스더, 박정석과 합심해 만든 조직이다. 애국심이 투철한 학생들을 비밀리에 선발, 항일구국정신을 갖게 했다. 김경희는 숭의여학교에서, 황에스더는 서울에서, 박정석은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15년 학생들에게 지리를 가르치던 김경희 선생은 하얼빈을 가리키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쾌살한 곳에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일제 사찰에 의해 이 사실이 발각됐고 김 선생은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송죽회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에게 생활비와 활동자금을 송금했다. 국내에 있는 독립운동가에게는 숙식비와 여비 등을 제공했다. 회원들은 매주 기도회 형식의 비밀회의를 열어 독립쟁취 방법을 모색했다.

이후 김경희 선생은 평양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대한애국부인회' 결성 준비를 도우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1919년 9월 19일 작고했다. 대안애국부인회는 같은 해 11월 결성됐다.

구순화, 이도신, 홍매영, 주유금, 조옥희, 백옥순, 김공순, 유예도, 조충성, 신순호, 김태복, 임성실··· 역사에 묻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다.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가 유일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년 교과서 기준 독립운동가 수록현황'에 따르면 국내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중 여성 독립운동가가 1명만 나오는 고교 국사 검인정 교과서는 3종이나 된다. 교과서에 실린 독립운동가와 근현대사 인물 208명 중 여성은 7.7%인 16명에 그쳤다.

박용옥 3·1여성동지회 명예회장은 "3·1운동운동이 지향한 최대의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 건설이었다. 오랜 세월 성차별로 추종적·주변적 삶을 살아왔던 여성들이 처음으로 만민평등의 국가 건설을 지향한 3·1운동에서 주체적으로 역사의 중심부에 뛰어들어 빛나는 활약을 했다"며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수많은 폭행과 모욕을 당하고 열악한 수감 생활을 견뎠음에도 관련 자료가 없어 독립유공포상도 극히 제한적으로만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아 의원은 "대한민국 독립의 역사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상당했음에도 역사교과서에 실리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있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청춘과 목숨을 바쳐가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분투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합당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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