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 넥타이를 하지 않은 캐주얼한 복장으로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LG전자
신세대 총수들이 격식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계열사간 독립 경영도 중시하는 모습이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3일 기흥사업장을 전격 방문했다. 5G 통신 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날 점심에는 이 부회장이 고동진 사장과 전경훈 부사장 등 경영진들과 함께 구내 식당을 찾아 파격 행보를 보였다. 수행인력도 배치하지 않고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으며, 짬뽕을 한그릇 먹은 후 자리를 떴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해 8월 경기 평택캠퍼스에서도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구내식당을 찾은 바 있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수행 인원을 동반하지 않은 채 직원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현대자동차그룹 올해 신년사도 정의선 총괄 부회장이 주재하면서 분위기를 다소 바꿨다. 엄숙한 진행 방식은 비슷했지만, 신년사에는 유연한 기업문화, 이사회 독립성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3일 기흥사업장 구내 식당을 찾아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삼성전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아예 시무식 자체를 없앴다. 최 회장은 시무식행사 대신 토크쇼 같은 대담형식으로 열고 직원들과 함께 공유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 SK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 최고 경영자가 신년 목표를 논의하고, 최 회장이 마무리를 하는 방식이다. 최 회장은 경영 실적 등 구체적 목표보다 '행복'을 추구하자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신년사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은 캐주얼 복장으로 연단에 올라서 주목을 받았다. 행사 참가자들도 편안한 차림으로 행사장에 나왔다.
30년간 시무식을 열었던 LG트윈타워 대신, 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 행사를 열고 미래 지향점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전년보다 2배 많은 800여명을 초대하기도 했다. 호칭도 회장 대신 대표로 불러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총수들이 격식을 거부하고 경영권을 분배하는 이유는, 미래 산업에서 창의성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연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조직 자율성을 장려한다는 주장이다.
재계에서는 이미 계열사간 자율경영 체제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삼성전자는 그룹 경영이 아닌 계열사가 따로 사업을 꾸려온지 오래이며, 현대차그룹도 해외영업본부를 권역별로 분리하는 등 경영권을 적극적으로 분리하고 있다. SK그룹도 SK네트웍스와 SK디스커버리 등 주요 계열사에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룹 계열사들은 각자 자사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며 "이미 오래 전부터 그룹 이익을 위해 희생을 요구받는 일도 없다. 이제는 다른 회사라는 기분까지 든다"고 말했다.
순환출자·일감몰아주기도 거의 해결된 상태다. 삼성그룹은 이미 규제에서 자유롭고, 현대차그룹도 올해지배구조개편안을 통해 문제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LG그룹과 SK그룹도 관련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등 방법으로 정부 요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총수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는 지났다. 신세대 총수들은 스스로 재벌 특권을 포기했다"며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라는 고정관념 자체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때"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