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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역

[되살아난 서울] (34) 노인과 공생하는 3·1운동 성지, 종로구 '탑골공원'

지난달 23일 민족 최초의 시민운동 발상지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았다./ 김현정 기자



3·1 운동의 발상지가 종로 탑골공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탑골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공원이자 독립운동 성지이다.

과거 탑골공원 터에는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고찰, 흥복사가 있었다. 세종은 1464년 흥복사를 중건해 원각사를 세웠다. 도성 3대 사찰로 번창했던 원각사는 연산군이 1504년 이곳에 연방원이라는 기생방을 만들면서 사찰로서의 기능을 잃게 됐다.

이후 중종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원각사 재목이 관청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면서 사찰 건물은 자취를 감췄다. 원각사가 있던 자리에는 원각사지 10층석탑과 원각사비만 남게 됐고, 탑이 있는 지역이라 하여 '탑골'로 불리게 됐다.

탑골 일대가 공원으로 만들어진 건 19세기 말이다. 공원은 고종 34년(1897년) 총세무사로 있던 영국인 브라운의 제안으로 조성됐다. 원각사 탑이 있던 장소라 하여 파고다(Pagoda·탑)공원으로 개원했으나 1992년 5월 옛 지명인 탑골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3·1 운동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

지난 11월 23일 탑골공원을 방문한 시민들이 유리보호각으로 둘러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관람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吾等(오동)은 玆(자)에 我朝鮮(아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것과 조선인이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민족임을 선언한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 서문이 낭독됐다.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탑골공원은 독립운동 성지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달 23일 3·1운동의 발상지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았다.

종로3가역 1번 출구로 나와 약 4분을 걷자 삼일문이라는 현판이 보였다. 공원에는 팔각정을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3·1운동 기념탑, 손병희 선생 동상, 원각사비, 만해 용운당 대선사비, 3·1운동 기념 부조, 탑골공원 사적비가 차례로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원각사지 10층석탑과 팔각정이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세조 13년(1467년) 경천사 십층석탑을 본떠 만든 것으로 공원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탑의 높이는 약 12m이다.

탑의 하단부에는 용과 연꽃무늬가 새겨졌고, 중간에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이 그려졌다. 상단부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이 조각됐다.

탑은 보호 유리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는 지난 1999년 석탑의 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로 만들어진 보호각을 설치했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다른 석탑과 달리 대리석으로 지어져 산성비와 공해에 취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김용만(64) 씨는 "55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교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런데 탑이 유리 감옥에 갇혀 있어 답답한 느낌을 준다"면서 "누가 저런 발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조형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동이다. 지나친 과보호"라며 혀를 끌끌 찼다.

지난달 23일 탑골공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팔각정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현정 기자



팔각정은 고종 때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각 정자다. 5단의 층단식 석축 기단 위에 마루 없이 기둥을 세운 구조로 이뤄졌다.

이날 팔각정 앞에서 만난 대학생 김상기(21) 씨는 "이곳이 3·1운동 발상지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됐다"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인데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것이 아쉽다"며 한숨을 쉬었다. 조선 시대 때 황실 관현악단이 음악을 연주했던 장소인 팔각정은 3·1운동 당시 학생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 최초의 시민운동 시발점인 삼일대로(안국역~탑골공원) 일대를 역사상징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탑골공원 후문광장 바닥에 3·1운동 만세 물결을 상징하는 발자국 모양을 새기고, 주차장으로 단절된 삼일대로변 보행길을 정비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3·1운동 준비와 전개 과정에 중요한 배경이 된 역사적인 장소들은 현재 그 흔적이 사라졌거나 방치돼 있다"며 "3·1운동 발상지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회복해 지역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인들 만남의 광장

지난 11월 23일 오후 탑골공원 북문 앞에 모인 노인들이 장기 대국을 구경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노인들은 탑골공원 북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이날 만난 한 노인은 "공원 안에서는 장기 못 둬. 내쫓아서"라며 씁쓸해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공원 내에서 장기를 두는 게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는 아니"라며 "장기판이나 바둑판을 대여해주는 등의 상행위만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양시 동안구에서 온 김수만(90) 할아버지는 "인덕원에서부터 지하철을 타고 왔다"면서 "이 나이가 되면 어디 갈만한 데도 없고 심심하다. 그런데 여기 오면 또래 노인네들 만나는 재미가 있다"며 마지막 남은 아랫니 네 개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김 씨는 날이 더 추워지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이내 울상을 지었다. 종로구 관계자는 "공원 일대에 추위 대피소(비닐 천막) 등을 설치할 계획은 현재 없다"며 "탑골공원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타 부서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3월 65세 이상 노인에게 발급되는 무임교통카드 이용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할아버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탑골공원이 있는 종로3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10월 말까지 어르신들이 집중된 시설 주변의 도로 보행환경을 개선해 사고 위험으로부터 교통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는 차량 감속 유도시설(과속방지턱, 과속경보표시 장치), 보·차도분리시설, 보도상 쉼터 등을 조성한다고 했다.

그러나 탑골공원 일대는 보행환경 개선사업이 추진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탑골공원 근처가 '창덕궁 앞 역사인문재생' 사업과 연계돼 있어 보행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대신 종묘공영주차장 쪽에 노인보호구역 4개소를 지정했다"고 말했다.

해가 저물어 주위가 어둑해지자 불콰하게 취한 노인들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들로 붐볐던 공원 후문에는 두 명의 노인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내 이들 사이에서 훈훈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박모(77) 할아버지가 장기를 같이 둔 김모(82) 할아버지에게 "형님, 내가 살 테니까 저기 올라가서 막걸리 한 사발 하이소"라며 술 한잔을 권했다.

김 할아버지는 "나는 처음 본 사람한테 폐 끼칠 수 없다. 갚을 능력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박 할아버지의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다. 약 10여 분 간의 대치 끝에 더 늙은 노인이 덜 늙은 노인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떠났다. 오후 6시. 탑골공원으로 출근했던 노인들이 모두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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