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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계

'韓 제지산업 선구자' 故 이종대 유한킴벌리 초대회장은 누구?

[b]제지 외길 인생 걸으며 유한킴벌리 창립 주도[/b]

[b]공장장-부사장-사장-회장 맡으며 성장 발판[/b]

[b]'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도 선보여[/b]

이종대 유한킴벌리 초대회장



한국 제지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한 이종대 유한킴벌리 초대회장(사진)이 27일 오후 별세했다.

특히 이 초대회장은 유한킴벌리 창립을 주도한 장본인으로 제지를 활용한 다양한 생활위생용품을 처음 선보이며 업계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동시에 국민들의 생활에도 큰 변화를 줬다는 평가다.

게다가 이 초대회장은 지금도 유한킴벌리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80년대 초반 시작한 장본인으로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도 힘써왔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경북 금릉 출신인 이 초대회장의 인생은 온전히 종이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3년 생으로 경북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엔지니어의 길을 걸은 그는 6·25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청구제지, 한국펄프, 한일제지, 이화제지에서 잇따라 공장장을 역임하며 한창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지를 산업의 한 축으로 끌어올렸다. 그때가 그의 나이는 고작 20~30대였다.

이후 이 초대회장은 유한양행으로 자리를 옮겨 역시 제지기술 부장을 맡으며 제지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유한양행이 미국의 킴벌리-클락과 공동출자한 유한킴벌리의 창립을 주도하며 자신은 공장장을 맡았다.

그때가 1970년 초로 그가 총괄한 유한킴벌리 1호 공장은 경기 군포에 있었다.

이 초대회장은 이후 유한킴벌리에서 부사장(77~80년), 대표이사 사장(80~95년), 회장(95~98년)을 각각 역임했다. 95년부터 2004년까지는 제지회사들의 연합체인 한국제지공업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유한킴벌리가 창립 이듬해인 71년에 크리넥스를 선보이고, 74년엔 화장지의 대명사인 '뽀삐'를 출시한 것도 물론 그의 손을 거쳤다.

게다가 1970년대에 제지 플랜트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직접 설계, 남미와 유럽으로 수출했다.

또 태국, 이란, 말레이시아, 콜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에도 관련 기술을 수출, 세계 제지업계 발전에 기여한 바도 크다.

무려 16년 동안 유한킴벌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는 국내의 대표적인 기업사회공헌 활동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는 유한킴벌리가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튼튼한 발판이 됐다.

이 초대회장은 이처럼 산업발전, 노사화합,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1978년), 석탄산업훈장(1984년), 철탑산업훈장(1994년)을 각각 수훈했다. 특히 1997년에는 동양인으로선 처음으로 세계제지산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자녀로는 이석우(사업)·재우(주식회사 키친스토리 이사)씨와 '빅마마'로 알려진 요리연구가 이혜정씨가 있으며, 대한여성성의학회 회장이자 전 영남대 의대 교수인 고민환씨가 사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이다. 발인은 30일 오전 8시, 장지는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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