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고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물량 공세와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호황기도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우려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업계는 3분기에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고점 논란을 무색케하는 모습이다. 자동차와 가전 등에서 반도체 비중이 높아지면서 시장 확대를 통한 장기 호황 기대에도 힘이 실린다.
D램 가격은 최근 들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디램익스체인지 캡처
◆고점 논란, 왜
반도체 고점 논란은 반도체 가격 하락 예측을 근거로 한다. 고부가가치 상품인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익률도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원인은 다양하다. 개인용 PC 수요가 줄어들었고, 올 들어 스마트폰 성장률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메모리 시장도 곧 축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어서다.
D램 반도체 가격 하락도 현실화됐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DDR4 8GB 가격은 전달보다 10.74%나 떨어진 7.31달러를 기록했다. 11월 들어서도 하락세는 이어지고 있다. 내년까지 20% 가량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중국 반도체 굴기'는 고점 논란 중심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세계에서 신설되는 반도체 라인 중 절반이 중국에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 투자 펀드만 1조위안(한화 약 16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꾸준히 기술력을 키우는 가운데, 물량 공세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고 나섰다. 중국 정부는 자국산 반도체 사용을 의무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잇딴 호실적에도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분기 실적 발표 후에도 적지않은 증권사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목표 주가를 유지하거나 하향했다.
◆그래도 '희망 노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일부 동의한다. 공급량 증가와 재고 소진, 그리고 1분기 계절적 비수기 등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이 하향세로 돌아선다는 '고점논란'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장 반도체 가격 하락은 단기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서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고, 최근 하락세는 단순 조정 국면이라는 분석이다.
서버 시장은 계속 확대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늘려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5G 도입과 함께 클라우드와 AI 서비스 등도 수요를 꾸준히 늘려나가면서, 내년 2분기에는 다시 시장 개선을 예측했다.
비메모리 분야는 반도체 업계 새 먹거리로 주목받는다. 스마트폰 카메라 스펙이 상승하면서 이미지센서 수요가 늘고, 3D와 지문 인식 센서 등 신규 제품도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특히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분야는 반도체 업계의 미래로 평가받는다. 자동차 부품에서 반도체 비중을 늘리고 있던 상황에서 전기차 도입으로 시장이 크게 확장됐다. 자율주행 장치에 쓰이는 카메라 센서도 반도체 업계 영역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작년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데 이어, 올해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한 전장사업 강화를 선언한 바 있다.
SK그룹도 미래 이동수단을 5대 신사업으로 선정하고 SK하이닉스의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내년1월 미국에서 열리는 CES에서는 SK하이닉스와 이노베이션, 텔레콤 등이 모여 공동 부스를 차린다. 자동차 업계가 주로 이용하는 '노스홀'에 터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젠진화 중국 공장 전경. 당초 내년부터 D램을 양산할 예정이었으나, 미국측 제재로 일정 연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푸젠진화 홈페이지 캡처
◆힘빠진 중국
중국발 공포도 힘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중국 반도체 기업 푸젠진화에 미국산 소프트웨어와 장비 등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조치를 내리면서다.
푸젠진화는 미국 마이크론사로부터 기술을 절취했다는 혐의로 법무부에도 기소된 상태다. 기술 협력관계였던 파운드리 3위 업체 대만 UMC에도 일시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사실상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을 제한하고 나선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중국의 반도체 산업 성장이 더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기술적으로도 중국의 성장을 크게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다. 업계가 보는 격차는 5년 안팎이지만, 실제로는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더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주기적으로 신제품 양산을 발표하면서 기술적 우위에서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수율을 높이는 등 생산 효율을 통해 원가 절감도 꾀하는 중이다.
파운드리 시장도 새로 차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화성 신공장을 완성하고 파운드리 시장에 본격 뛰어든다. 최첨단 극자외선 (EUV)장비를 통해 7나노 시스템을 실현하고, 파운드리 시장 강자인 대만 업체들을 공략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업체인 SK하이닉스IC를 분사한데 이어, 미국 사이프레스사와 홍콩에 합작사를 설립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고점 논란이 몇년째 이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반도체 업체는 역대 최대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며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반도체가 담당하는 영역이 크게 넓어지면서, 이에 대비한 국내 반도체 업계는 호황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