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미국이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가는 가운데 격해지는 미·중 무역분쟁이 신흥국 위기로 번져 '10년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금리차가 계속해서 벌어지면 외국인의 자금 유출 속도는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할 만한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미래가치를 반영한다는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4일 코스피지수는 전일대비 0.40% 하락한 2097.58에 장을 마감하며 연중 최저치를 또 다시 경신했다. 외국인은 5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이다. 이달 들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만 총 3조2529억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 매력 잃은 한국 증시
연 초만 해도 증시전문가들은 코스피지수가 연내 3000, 문재인정부 임기 내 4000포인트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상장사의 실적이 호조를 보이는데다 스튜어드십코드(steward ship·기관수탁자 책임) 도입으로 코리안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할인)가 해소돼 증시 밸류에이션(가치) 상승을 기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더 이상 밸류에이션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미중 무역분쟁, 금리 격차 등 대외적 이슈가 증시 상승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 증시는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겼던 2100선도 깨졌다. 코스피 12개월 확정 실적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3배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다. 채권 전문가들은 오는 11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한은의 금리인상이 내달 한 번에 그친다면 한미 금리역전차(差)는 1%포인트 이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 상반기에만 두 차례 금리를 올릴 것을 시사하고 있어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금리 격차가 1%포인트를 넘어설 경우 대규모 외국인 자본 이탈을 우려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은 신흥국에 부담이다. 지난 23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미국의 군함이 대만 해협을 통과했다는 소식 또한 전해졌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부과 여부가 무역전쟁의 화두였던 반면 이젠 '군사적' 이슈까지 무역전쟁의 한 부분으로 추가된 것이다. 실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무역전쟁의 양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자금의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의 수출을 이끌던 반도체 업황도 휘청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국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6%다. 또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5% 수준이다. 하지만 반도체 사이클 둔화 및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세터장은 "내년에 D램이 3~4% 내에서만 가격 조정이 이뤄지면 반도체 업황은 소프트랜딩할 것이고, 그 이상 가격이 떨어지면 하드랜딩 우려로 국내 증시 및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 어디에서 폭탄터질까
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은 1984년 남미 외환위기부터 시작한다. 이어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촉발시킨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약 10년 주기로 글로벌 위기가 일어났다. 올해는 미국 금리 인상이라는 대외요인과 정치 불안, 과도한 외채 등 취약성을 갖춘 신흥국에서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터키는 외환보유고보다 단기외채가 더 많은 지급불능 위험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이집트,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 국내총생산(GDP) 대비 3%가 넘는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다른 신흥국에게도 위험이 전이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유럽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Baa2→Baa3)하고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제시했다. 또 내년부터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현실화 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 진행형인 글로벌 위험자산의 10월 쇼크는 2019년 글로벌 매크로 투자환경의 예고편으로 보인다"며 "내년 한국 경제와 기업이익의 하방 리스크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