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북한 저작권이 보호받는 만큼, 북한에서도 한국 저작권 보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민간 교류 활성화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상호주의적인 저작권 보호 협정을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남북은 저작물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저작권 인정 범위가 다르다. 한국과 북한 모두 국민(공민)이 예술 활동을 할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한다.
하지만 북한의 예술 창작은 공산주의 원리에 따라 진행되므로, 실제 개인의 창작물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15년 발표한 '북한저작권법 및 남북 간 저작권 분야 교류·협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북한 예술인은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소속 단체의 구성원이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주택과 생활비, 원고료를 받는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 원리에 충실한 모습이다.
저작물에 대한 재산적 권리는 '저작물이 발표된 때부터 그것을 창작한 자가 사망한 후 50년'까지 보호한다. 한국은 지적재산권이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한 후 70년간 존속'한다고 규정한다.
북한이 저작권 발생 시점을 저작물의 발표로 보는 반면, 한국은 창작한 때로 정한 점도 다르다.
1988년 월북·납북 작가의 문학이 해금되면서 남북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법원은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라는 헌법을 근거로 저작권자를 판단해왔다./오픈애즈
◆명확한 합의 없는 저작권…'해적판 문학' 시절도
공통점은 남북한이 국제 저작권 협약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저작권분야 남북교류협력 현황 및 발전방안연구(협력발전연구)'에 따르면, 남북은 모두 '베른협약'에 가입돼 있다. 한국은 1996년, 북한은 저작권법을 도입한 지 2년이 지난 2003년에 가입했다.
베른협약은 저작자를 모든 동맹국에서 내국인 저작자와 동등하게 보호한다는 내국민 대우의 원칙을 선언한다. 남북한 모두 외국인의 저작물을 가입한 협약에 따라 보호한다.
문제는 한국과 북한이 서로 외국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법원은 북한 저작권 분쟁에서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6년 월북한 이기영 작가의 소설 '두만강' 저작권 침해 금지 가처분 사건이다. 도서출판 풀빛은 1988년 작가의 장손 이상열 씨와 두만강의 독점출판 계약을 맺었다. 한편 도서출판 사계절은 일본에서 소설 원본을 복사해와 출판했다. 풀빛과 이씨는 사계절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승소했다. 당시 법원은 북한이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원작자의 사망으로 이씨가 저작권을 상속했다고 판단했다. 원작자의 저작권이 조선작가동맹 등 북한 내 기관에 양도됐다는 사계절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밖에도 법원은 ▲납·월북 작가 일반 작품 출판 금지 처분 무효 확인 소송 ▲소설 '갑오농민전쟁' 저작권법 위반 사건 ▲'리조실록' 번역본 제작배포금지가처분 및 이의신청 사건 ▲'리조실록' 번역본 관련 저작권법 위반 사건 등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남북 간 명확한 합의 없이 법적 분쟁이 이어진 가운데, 저작권 수요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늘어났다.
한국은 북한의 요구에 따라 2005년 북한 저작물 이용 창구를 마련했지만, 반대로 북한이 한국 저작권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 향후 민간 차원에서 저작물 교류가 이어질 때를 대비해 양측의 저작권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오픈애즈
◆문화교류 활성화 대비해야
저작권 관련 남북 당국 간 합의와 기준은 2005년 마련됐다. 통일부는 북한의 요구에 따라, 북한 저작물 이용 시 북한 측 저작권자 승인과 저작권사무국의 확인을 받겠다고 공표했다.
현재 한국에서 북한 저작물을 합법적으로 이용하려면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통해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 저작권료를 보내면 된다. 현재 통일부가 저작권료 반출 승인을 보류하고 있으나, 지난달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개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북한 저작물 사용 계약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협력발전연구에 따르면, 2006년 어문과 사진, 음악과 영상 저작물을 통틀어 35건이던 계약이 2015년 96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계약된 저작물은 총 657개로, 어문 저작물(524개)과 영상 저작물(98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남북한 저작권 관련 국내 분쟁은 대부분 한국에서 북한 저작물을 사용한 데 따른다. 분쟁 과정에서 북한 내부 사정에 관한 사실 확인도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북한 내에서 한국 저작권을 침해했을 때 행정적·형사적 처벌을 기대할 수 없다. 현재 북한에서 무단으로 유통된 한국 출판물이나 영상을 보다가 적발되면 최고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난달 한국 가수들이 평양에서 '봄이 온다' 공연을 하면서 저작권 대상이 되는 영상물이 만들어진 상황이다.
또한 향후 민간교류 활성화가 예고된 만큼, 반입이 허가된 출판물 등에 대한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의 저작권 보호 기간과 저작권의 권리 제한 차이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법조계에서는 당장 법제 통일은 어렵기 때문에, 저작권 분야 교류 협력에서 상호주의적인 협정으로 차이를 좁히며 '저작권 통일'을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오픈애즈
◆독일처럼 문화 협정 적극 맺어야
앞서 동·서독은 분단 시절인 1972년 12월 기본조약 서문에 "민족 문제와 같은 기본적 문제에 대해서는 상이한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를 넣고 각 분야별 교류 협력을 규정했다. 이후 1986년 5월 문화협정으로 출판물을 포함한 저작권의 상호 보호를 심화시켰다. 서독은 교류·협력을 문화 당사자끼리 하도록 하고 국가가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저작권 상호 보호와 교류로 '문화 통일'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다.
학계에선 남북이 각자의 저작권법에 우선해 효력을 갖는 특별협정 성격의 합의서 체결로 저작권을 상호 보호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당장 법제 통일은 어려우므로, 저작권 분야 교류 협력에서 상호주의적인 협정으로 차이를 좁혀가며 '저작권 통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협력발전연구에 참여한 한명섭 통인법률사무소 변호사(통일부 통일법제추진위원회 위원)는 "법적으로는 저작권 관련 분야 교류도 5·24 조치 해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는 우리 측 저작권자가 북한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문제제기를 할 마땅한 방법도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문화교류와 저작권 보호 관련 협정 또는 합의서 체결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