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상장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섀도보팅제(shadow voting·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완전 폐지된 후 처음 열리는 주총이기 때문이다. 각 사는 주요 안건에 대한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을 지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주총 자체가 열리지 못하거나 안건이 부결될 되는 상장사가 대거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섀도보팅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 다른 주주들의 투표 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동일한 지분을 소유한 주주 100명 중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가 10명일 경우 해당 안건에 대해 7명이 찬성하고 3명이 반대하면 출석하지 않은 나머지 90명의 주주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율로 표결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과거 주주들은 기업 경영보다 배당에 대한 관심이 컸다. 때문에 주주들은 회사 주총에 무관심했고, 기업들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주총이 무산돼기 일쑤였다. 이에 정부는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인 '섀도보팅'을 도입했었다.
하지만 지난 2014년부터 섀도보팅이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섀도보팅이 최대 주주 입맛에 맞는 결정을 위해 악용되면서 주주 전체 의사를 왜곡한다는 지적과 함께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선 주주들의 입김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이에 3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작년 말 완전 폐지됐다.
◆ '3%룰' 지켜질 수 있을까?
올해 섀도보팅을 이용할 수 없는 첫 주총 시즌이 다가오자 주총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법무부가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용역한 '섀도보팅 실태 분석 및 폐지에 따른 대응방안 연구'를 보면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섀도보팅을 통해 의결된 주총 안건은 6268개로 나타났다. 이중 73.2%(보통결의 기준)는 섀도보팅이 없었다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상법상 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되기 위해선 발행주식 총 수의 25% 이상 찬성과 출석주식 수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액주주 비율이 높은 상장사의 경우는 주주들이 단기 투자를 위해 접근했기 때문에 주총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소액주주들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이 5개월(코스피 4.9개월, 코스닥 2.2개월)도 채 안된다. 주총에 참여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또 실제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율은 주식수 대비 평균 1.88%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감사를 선임해야 하는 상장사다. 이사 선임, 임원 보수 승인 등과 달리 감사 선임에는 '3%룰'이 적용된다. 3%룰은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은 감사선임 안건에 대해 3% 이내의 의결권밖에 행사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주주의 독단적인 감사 선입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가령 최대주주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더라도 감사 선임에는 3% 지분만 인정한다. 정족수(25% 이상)를 채우기 위해서는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22% 주주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을 채우지 못해 감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
상장사협의회는 올해부터 3년간 516곳의 상장사가 정족수 문제로 감사 선임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당장 올해부터 1809개사 기준으로 감사 선임이 필요한 기업은 301곳으로 전체 17%에 이른다. 이에 따라 올해 감사 선임이 필요한 기업들은 주총에 대한 주주들의 관심이 절실한 실정이다.
◆ '떼 주총' 여전…주총 분산 요원
금융당국은 섀도보팅제 폐지가 결정된 이후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성공적인 주총 개최를 위해 노력해 왔다. 일단 금융위원회는 주총이 몰리는 날을 피한 상장사가 감사인을 선임하지 못해도 관리종목 지정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떼 주총' 현상은 크게 완화되지 않았다.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에 주총 일정을 신고한 상장사 1283곳 가운데 절반 이상(54.7%)이 3월 22, 23, 28일에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한 전자투표제 효과 역시 미미하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않아도 컴퓨터(PC)나 모바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지난 2010년 5월부터 시행된 전자투표제는 지난 해 2~3월 주총을 개최한 상장사 기준 전체 주식 수의 2% 정도만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만약 올해 주총에서 섀도보팅 폐지로 인한 부작용이 대거 나타날 경우 주총 정족수 완화에 대한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해외는 주총개최를 위한 의결정족수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영국은 2인 이상만 있으면 주총을 개최할 수 있으며, 독일의 경우는 회사가 원할 경우 스스로 의사정족수를 정할 수 있다. 또 일본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과반수이나 정관으로 삭제 가능하고, 미국 역시 정관으로 이 비율을 낮출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은 의결정족수 완화를 논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며 "주총 분산과 전자투표 활성화 등을 통해 주총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을 증대시킨 후 조건 완화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