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12 : 45km(술탄하느 - 악사라이)
난 옛 실크로드의 궤적을 더듬으며 자전거로 터키 중앙 고원지대를 횡단하고 있다. 그 옛날 그들이 이 길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찾아 나선 사연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어떤 이는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어떤 이는 대제국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또 어떤 이들은 미지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개미 떼처럼 이 길을 오갔을 것이다. 그들은 이 길을 오가며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이루었을까?
사진/아름다운유산 우헌기(정복자 청년 오스만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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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라이-네브세히르 도로를 따라 악사라이를 벗어나면 고개 위에 '바그다드 정복자 청년 오스만'이라 적힌 동상이 있다. 투르크족은 여러 부족이 오랜 기간 서쪽으로 이주해와 적당한 지역에 터를 잡았다. 그들 중 가장 먼저 세력을 떨친 게 콘야를 중심으로 한 중앙 아나톨리아 지방에 자리 잡은 셀죽투르크다. 그러나 이 왕국은 그리 오래가지 못 하고 몽골군에 초토화되고 말았다. 몽골이 물러간 뒤 두각을 낸 세력이 서북부 오늘날의 부루사에 수도를 정한 오스만 왕국이다. 오스만은 수천 년 동안 동서남북 각 지역에서 들어온 다양한 사람, 그들의 문화를 용해하여 수 세기 동안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도로 바로 옆에 심상치 않은 옛 건축물 잔해가 있어 가봤다. 벽 두께나 벽돌이 단순한 가정집은 아니다. 더구나 주변에 늘려진 돌들이 제법 큰 건물의 잔해임을 말해준다. 이게 대상들의 숙소인 '카라반사라이'의 흔적이 아닐까? 바로 옆에 돌보는 이 없는 공동묘지가 있다. 인가가 없는 이곳에 있는 저 무덤들은 또 뭘 말해주는가? 오랜 여행에 지치고 병들어 죽은 사람들이 잠든 곳이라면? 나의 상상이 여기에 이르자 이 건 분명 카라반사라이 잔해일 거라고 결론을 내린다.
사진/아름다운유산 우헌기(잔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하산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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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이름이 '악사라이'다. '악'이란 '흰, 깨끗한'의 뜻이고, '사라이'란 궁궐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카라반사라이'가 있었고, 악사라이는 바로 눈 덮인 산이 있는 곳에 있는 카라반사라이를 지칭하지 않았을까?
오늘 갈 거리는 반나절 거리다. 그래도 일찍 출발하자. 8시 반경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데 핸들이 좀 노는 듯한 느낌이 있어 살펴봤다. 이상이 없는데... 그때 종업원이 가르쳐줬다. 앞바퀴 바람이 빠졌다. 아뿔싸!
이 나라 사람들은 대개 괜찮다면서 자전거를 건물 밖에 두라고 하지만 난 안에 두겠다고 우긴다. 그리곤 잠가둔다. 아침에 보니 줄이 늘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만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친구가 타이어 바람 빠진 걸 알고 있었구나. 얼른 공구를 꺼냈다. 힘이 좋은 그 친구가 타이어 빼고 끼우는 걸 도와줘서 30분 만에 끝내고 출발했다.
사진/아름다운유산 우헌기(지나가는 나를 기여코 세워 말을 걸어온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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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반에 숙소(Serra hotel)에 도착했다. 점심 먹고 구멍 난 튜브를 때우려고 보니, 패치도 여유분이 하나뿐이고, 접착제도 굳어 못 쓰게 생겼다. 무겁게 챙겨 다니면서, 정작 가장 자주 쓸 부품이 떨어지다니... 말이 안 나온다.
오늘같이 시간 여유도 있고, 큰 도시에 있을 때 준비해야 한다. 내일 또 타이어가 안 터진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으랴. 내 사정을 알게 된 주인이 자기랑 같이 나가잔다. 친구 자동차 부품 가게로 데리고 갔다. 타이어도 팔고 수리도 하는 곳이다. 그들이 쓰던 걸 좀 얻어왔다. 너무 수월하게 해결했다. 친구 고마워. '테세쿨에데름' 보름만에 이 말을 완전히 외웠다.
호텔로 돌아올 때 차 안에서 한국 사랑한다고 했다. 삼성, LG, 현대를 거명하면서 자기 나라말로 뭐라 뭐라 했다. 외국인들은 이들 유명 기업을 통해 우리나라를 알게 된다. 기업의 이미지가 바로 국가의 이미지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나라 따로 기업 따로가 아니다.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강하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고도 불행한 일이다. 이유야 있겠지만 시급히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들 기업이 그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때로는 부정한 방법으로 성장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들이 국가를 위해 기여한 측면도 많다. 사실 그들이 받은 혜택과 사회에의 기여도를 정확하게 산출하여 공과를 측정해낼 순 없다.
이 문제의 본질은 사실 여부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데에 있다. 이 또한 사회 발전 과정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고, 성장통인가? 사춘기처럼 이런 시기를 잘 보내야 건강하게 성숙기에 진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