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기생활안전법)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달 시행됐지만 안전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추가 개정 또는 전면 유예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안전'을 이유로 의류, 구두 등 위해성이 크지 않은 제품 조차도 보다 강화된 법을 지키도록 하고 있어 이를 제조, 판매하거나 단순 중개하는 소상공인들이 헌법 소원을 제기할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전기생활안전법'이 뭐길래
14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소상공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전기생활안전법은 기존 '전기용품안전 관리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을 통합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등으로 안전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면서 전기용품 외에 의류, 가방, 신발 등 생활용품까지 '안전'을 강화해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법에선 생활용품을 '공업적으로 생산된 물품으로 별도의 가공(단순 조립 제외) 없이 소비자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제품, 그 부분품, 부속품(전기용품 제외)'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기용품과 생활용품은 위해수준에 따라 257종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위해도가 가장 높은 50종은 '안전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기용품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위해도가 중간인 제품 95종은 안전확인 또는 자율안전확인을 거쳐야 한다. 가장 위해도가 낮은 제품 112종은 자체 시험 또는 제3자로부터 제품시험을 거쳐 공급자적합성 확인(KC 인증)을 받아야 한다. 세 단계에 해당하는 제품 모두 KC마크를 붙여 판매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법은 당초 지난해 1월17일 공포됐다. 1년의 준비·유예기간을 거쳐 지난달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특히 개정안은 의류, 공예품, 핸드메이드, 향초 등 위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제품을 제조하거나 이를 수입, 판매하는 경우에도 KC인증을 받도록 했다. 다만 KC인증서 보관·게시는 1년간 더 유예하기로 했다.
◆6만 구매대행사업자, "죽겠다" 이구동성
전기생활안전법(전안법)을 놓고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위해성이 높지도 않은 112개 생활용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소상공인들도 공급자적합성 확인, 즉 KC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원재료를 화학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 단순 절단하거나 조립, 박음질 등을 통해 생산하는 제품도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법 대로라면 제조·판매자들은 안전성 검사와 시험성적서 보관, 안전정보 게시, KC마크 부착 등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소상공인연합회 박중현 전안법대책위원장은 "영세 소상공인들이 KC인증을 받으려면 한 건당 20만~30만원이 드는데 이는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관련법은 다품종·소량으로 신속하게 생산하는 소상공인의 특성을 무시한데다 평균 5일 이상 소요되는 안전성검사를 거칠 경우 생산 및 판매 차질이 불가피해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업계 추산 6만여 명에 이르는 구매대행사업자, 의류 등을 가공해 판매하는 4만여 명의 동대문시장 상인 등이 전안법 시행으로 직접적 피해를 입게될 대표적인 당사자들이다.
글로벌셀러창업연구소 안영신 소장은 "6만여 구매대행사업자는 소비자들이 자가 사용 목적으로 해외직구를 대행해주는 일종의 '서비스업'으로 수입업과는 다른 개념"이라며 "법에선 구매대행사업자까지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만 사업자들은 단순 구매대행만 하기 때문에 인증 받을 상품도 없다는 것을 법을 만든 정부만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문제 인식… "개선방안 검토 중"
법 시행으로 피해를 입을 당사자들은 법을 개선할 때까지 시행을 유예하는 게 최선이라는 분위기다.
숭실대 김현순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제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적절한 기준과 관리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이 법은 안전성 시험에 드는 비용·시간 증가→사업자부담→원가상승→소비자가격 상승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만큼 제품 특성을 고려해 의무인증 여부, 기준 등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주형환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제품 특성, 위해정도, 제조자냐 판매자냐, 단순 구매대행이냐 등을 감안해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전안법을 놓고 정부와 업계는 이날 처음으로 공식 만남을 가졌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산업부 정만기 차관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는 소상공인, 구매대행업계, 소비자단체, 학계 전문가 등이 참석해 의견을 공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