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묵 두란노아버지학교 이사장. /이창원 기자
우리나라 사회가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가족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특히 과거 일반적이었던 '권위주의적 아버지'는 대부분 모습을 감췄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좋은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고, 우리사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가족들과 멀어지는 느낌에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과연 어떤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으며, 최근 '아버지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김성묵 두란노아버지학교 이사장은 지금도 생소한 아버지교육을 22년 전인 1995년, 학교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인물이다. 이에
<메트로신문>
은 오랜기간 현장에서 많은 아버지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온 김 이사장을 만나 '좋은 아버지'를 꿈꾸는 아버지들을 위한 조언을 들어보기로 했다.
-'아버지학교'는 지금도 신선하다는 느낌이다. 설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아버지학교를 시작한 1995년은 이른바 '고개숙인 남자', 아버지들의 위상이 힘들어질 때였다. 경제가 힘들어지면서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 때 가정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여자들은 관심을 가지는데 남자들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왜 그럴까 살펴보니 남자들은 가정문제를 이야기하면 죄 지은 사람처럼 미안한 마음에 피하는 거였다. 그래서 '이래선 안 되겠다. 남자들만 모아서 교육을 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단, 교육을 시키되 야단치지 않고, 격려하고 진짜 가정에서의 역할, 아버지들의 가정·사회에서의 역할을 격려해야겠다는 차원으로 시작하게 됐다.
-'학교'의 형태로 아버지교육을 하기 시작한 이유가 있는가.
▲보통 강의들에서는 집단교육 형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집단교육은 감동은 받지만 사람을 절대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학교에서는 5주 동안 숙제를 통해서 훈련을 통해서 습관을 바꿔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형태로 '삶의 패턴'을 훈련시킨다. 학교형태이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다이나믹한 실습 시스템'이다. 숙제도 내주고 매일 점검도 한다. 숙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내와 자녀에게 편지를 써주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등 간단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낙제하는 아버지들도 있는가?
▲바뻐서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 숙제도 잘 해온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니 하는 부분도 있고, 숙제를 하다보면 자신은 한 걸음 갔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두세걸음씩 뛰어오는 감동스런 모습이 연출되니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학교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무엇인가.
▲'좋은 아버지'의 기본 요건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관계회복'이다. 아버지 문제의 핵심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독립'이 안 되고, '고립'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독립은 가족들과 정서적 유대감이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 홀로 서는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 홀로 남으면 고립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고립이 된다. 돈이 있을 때는 돈 때문에 가족의 중심인 듯 보이지만 돈을 못 벌게 되면 그대로 고립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들의 경우에는 아이들과 관계가 잘 되어 있고,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가 잘 되어 있으니까 여성들은 독립이 가능하다.
아버지들은 '관계'라는 것을 배운적이 없어 어쩔 줄을 모른다. 관계에 초점이 맞춰있지 않고, 돈 벌어주는 것이 관계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학교에서는 돈 벌어주는 것과 애착관계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재밌는 사실은 아버지들의 관계는 자신들의 아버지로부터 배운 패턴 그대로 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관계의 뿌리'라고 정의를 한다.
관계훈련의 주 내용은 접근과 반응이다. 접근과 반응사이 감정이 일어나게 돼 있는데, 기분 좋게 접근하면 감정이 좋아지니까 기분 좋게 반응하고, 기분 나쁘게 접근하면 감정이 나빠져 기분 나쁘게 반응한다. 대부분 접근 방법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고 있다. 이것이 기본이고,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다른 좋은 것을 교육한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는 생각이다.
-기억남는 사례가 있는가?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있는 집이었는데, 아버지학교 숙제로 아이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는 모습을 본 아내가 "그런 숙제는 왜 아이한테만 있냐? 나도 해줘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쑥스러워서 못한 것인데 해달라고 하니까 해줬단다. 단순한 건데 마음만 갖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실천을 통해서 관계회복이 된다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반적으로 친구같은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좋은 아버지는 친구·스승·전사·왕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의 역할만 하는 것은 4분의 1의 역할만 하는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과거 자신들의 어머니의 스트레스와 아내가 겪는 지금의 스트레스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들 아버지처럼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아내를 도와준다는 생각을 버리고 함께한다는 생각을 하라고 교육하고 있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아버지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일전에 더글라스 대프트 (Douglas Daft) 코카콜라 전 이사회 의장이 신년사에서 "인생은 일·가족·친구·건강·영혼 5개의 공으로 하는 저글링과 같다. 이 중 일이라는 공만 고무공이고, 나머지는 유리로 만들어진 공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고무공만 안 떨어뜨리려 하고, 특히 가장 잘 떨어뜨리는 것이 가족이라는 공"이라고 말했다. 가족은 늘 옆에 있으니까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돈 번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녀들은 떠나고, 아내들은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가족이 이해해줄거라 생각하지말고, 일을 열심히 하되 가족을 우선순위에서 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것이 IMF의 교훈이다.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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