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의혹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함에 따라 특검과 삼성간의 법리싸움이 시작됐다. 당장 오는 18일 오전 열리는 '영장실질심사' 때부터 양측의 주장은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보인다.
일반적으로 구속영장은 '범죄소명정도가 충분하고 피의자가 도주우려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법원이 수사기관의 청구를 받아들여 발부한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의 '증거인멸' 우려를 강조하며 영장발부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삼성측은 '대가성 뇌물'이 아닌 청와대의 '강압'에 의한 지원임을 주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누굴 위한 합병인가
우선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이라는 전제 아래 성립된다.
특검팀은 해당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 삼성측이 '대가성 거래'를 했다고 판단했다. 누가 먼저 거래를 제시했는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반면 삼성은 그룹 전체의 경영 효율화를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은 '형사재판'이다. 법원은 '정황'만으로 피의자의 혐의를 규정하는 것을 금기시 하고 있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능력이 명확한 증거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는 '증거재판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특검은 우선 두 계열사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정황만으로 '뇌물죄'의 범행 동기를 정했다면 수사는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삼성에서 반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성측은 두 계열사 합병을 경영권 승계와 연결 짓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실제 국민연금은 지난해 삼성물산 투자로 인해 3700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지만, 삼성그룹 차원에서는 6조원의 막대한 평가차익을 얻었다. 이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7%에 달하는 수익률을 달성하게 한 공신이기도 하다.
한 삼성 관계자는 "기업이 총수 경영권만을 위해 무리한 인수합병(M&A)를 감행하지 않는다"며 "검토에 검토를 거듭해 실행한 M&A를 3세 경영권 승계로 치부하는 발상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피의자'인가 '피해자'인가
특검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입증을 위해 삼성의 지원이 '대가성'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야한다. 이 부분에 대해 특검팀은 확신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특검 관계자는 "그 동안의 조사를 통해 핵심적인 증거들을 확보했기에 기업 총수에게 영장 청구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특검팀은 전문가들이다. 정황만으로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해당 거래를 누가 먼저 제시했는가를 따져야 한다. 삼성측이 제시했을 경우는 '뇌물죄'를 부정하기 힘들지만 해당 거래를 청와대가 제시했다면 이는 '거래'라기 보다는 '강요'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삼성의 주된 주장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 2015년 7월 께 박 대통령은 기업 총수들과의 독대 자리서 "문화·스포츠 산업 육성에 힘써달라"취지의 당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을 통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압박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당부에 연이은 청와대의 모금 요청은 곧 바로 대통령의 요구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삼성측이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와 함께 뇌물죄는 뇌물공여자들의 '이익'이 수반돼야 한다. 특검은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에 대한 지원과 최씨의 개인회사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의 220억 컨설팅 계약의 대가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삼성측은 정부의 검찰조사, 세무조사 등의 압박에 의한 강제 모금이었으며 이로 인한 이득은 전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의 후원이 '부정청탁'이라면 미르·K스포츠에 후원한 45개 기업 모두 같은 행위로 보고 똑같은 수사를 반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삼성의 재단 후원금이 부정청탁이라면 사실상 미르·K스포츠에 돈을 낸 모든 기업도 같은 사유로 후원했다고 봐야하는 오류가 발생한다"며 "똑같이 돈을 냈는데 누구는 뇌물이고, 누구는 강요고 또 다른 누구는 문화산업 육성이라는 이중잣대를 갖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잡기 위한 포석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대통령의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는 입장도 나온다.
대통령의 이 부회장 독대 정황, 최씨와의 관계, 안 전 수석의 개입 등을 종합해 삼성과 대통령간의 뇌물공여가 있었다는 것을 규명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국민연금과 이 부회장을 몰아넣어 대통령의 혐의를 규명한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인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날 구속 기소됐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여부가 결정된 직후 박 대통령의 직접조사 계획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에 대해선 '제3자 뇌물죄'보단 '단순뇌물죄'로 무게가 쏠리고 있다. 당초 삼성-최순실-대통령으로 이어지는 3자뇌물죄가 유력했었다. 하지만 특검은 박 대통령과 최씨가 이익을 공유했다는 핵심적인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특검보는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 대통령과 최씨 사이의 '이익공유' 관련 상당부분 입증됐다. 객관적 물증을 확보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