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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의 탕탕평평] (31) 존재의 무게

김민 데일리폴리 정치연구소 소장(동시통역사, 전 대통령 전담통역관·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



간혹 주위에서 보면 자신의 존재를 구태여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이런저런 얘기로 자신을 드러내어도 존재의 가벼움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일정 연령이 되면 웃어른이나 선배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있고, 누가 구태여 가르쳐주거나 알려주지 않아도 인생의 경험을 통해 그냥 알아지는 것이 있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자신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라고 훈계하는 것이 일리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필자도 어릴 적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제 막 체감하는 중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연륜(年輪)에 비례해 자신만의 경험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즉 자신이 지닌 렌즈를 통하여 세상을 정죄하고 판단하려는 의지가 그만큼 견고해진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두 개의 귀는 그냥 장식물일 뿐이다.

동시대 동일한 국가와 사회에 살면서도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사고(思考)와 다양성과 가치의 차이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각자의 인생과 존재의 무게감의 차이는 남이 아닌 내 자신에 의해 설정되고 표현되는 것이다. 내 생각처럼 남이 나를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각자가 지니고 있는 렌즈의 색상과 사이즈대로 세상은 그렇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깡패를 피하는 것은 결코 권위와 순종에서 비롯된 처신이 아닐 것이다. 그냥 그렇게 지나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권위와 존경심은 상대가 내 자신에게 어떤 대접을 해주는가에 따라 상이(相異)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대부분 가르치려고만 하지, 들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마이동풍(馬耳東風)'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정당이나 정치인이 자신의 선거 때 자신들이 설정한 플랜에 의해 자신들만의 생각과 전략을 설정해두고 젊은 세대에게 접근하며 그것을 '소통(疏通)'이라며 혼자 만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자신의 플랜에 의한 혼자만의 성취(成就)이지, 어찌 소통(疏通)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상대가 진심으로 나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져줄 때 비로소 상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로인해 상대에 대한 권위에 자연스레 순종하게 되고 상대의 존재에 무게감이 실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서로가 편안한 모양새가 아니겠는가.

자신보다 어리다고 무조건 말 놓고, 가르치려 드는 것은 교만이고 착각이다. 그것은 권위도 아닐뿐더러, 상대로 하여금 어떤 존경심도 끌어낼 수 없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예의가 없는데, 상대도 역시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가장 단순하고도 당연한 원리를 많은 사람들이 망각(忘却)하며 살아가고 있다. 필자가 십년 이상 후배들에게도 말을 함부로 하거나 놓지 않는 분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내가 먼저 대접해라. 그것이 당연한 이치(理致) 아니겠는가.

인생은 물리적인 나이에서 상하관계가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와 사이즈에 의해 더 우위에 있는 쪽에 무게가 실리기 마련이다. 그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이다.

정치권이 지금 보수의 붕괴를 자초한 것도 쉽게 표현하면, 소위 '꼰대' 짓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진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설득력 있는 대안과 제시가 아니라, 경험과 경륜조차도 무시한 처사, 형제끼리 부모에게 대항하면서도 자신들의 결속력조차 이끌어내지 못하는 모습. 그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그냥 반항에 머무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인이든 정치든 존재의 무게와 중함은 상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처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명심하자.

보스와 리더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보스는 말로만 지시하고, 리더는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 한다. 보스는 명령에 의존하며 복종을 이끌어내려 하지만, 리더는 행함으로 상대에게 동의와 순종을 이끌어낸다.

내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바라지 말자. 상대에게 복종을 이끌어내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순종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가치이자, 존재의 무게를 별 무리 없이 가장 자연스레 중하게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는 어떤 모습을 추구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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