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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새벽을 여는 사람들]지하철 첫 차를 타는 사람들

지난 19일 오전 5시. 추석 연휴를 마친 월요일에 하루 평균 9만명 이상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잠실역을 찾았다.

'과연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지하철 첫 차라곤 대학 시절 밤새 선후배들과 술을 먹고 타본 기억뿐인 기자로선 이른 새벽 조용한 역사(驛舍)가 낯설게 느껴졌다.

지하철 운행 시간표를 살피니 평일 잠실역에서 첫 차가 출발하는 시간은 새벽 5시 40분이었다. 운행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나와선지 역사엔 기자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낮이면 역사 내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점 거리도 고요했다. 모두 셔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저 멀리 홀로 걷는 행인이 눈에 띄었다.

역사엔 기자 외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낮이면 역사 내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상점 거리가 고요했다. 모두 셔터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저 멀리 홀로 걷는 행인이 눈에 띄었다./이봉준 기자



"일거리를 얻고자 직업소개소에 가느라 일찍 나왔습니다. 첫 차를 타고 가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오늘의 일자리를 뺏길 수 있거든요."

종로의 일일 직업소개소에 간다는 장구영 씨(50대)는 멋쩍게 미소 지었다. 항상 이렇게 첫 차를 타고 소개소로 가느냐는 질문에 장씨는 이렇게 답했다.

"몸이 불편하지 않은 날은 될 수 있으면 나가려고 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다보니 일을 안하면 다음날 끼니 때우기도 힘들거든요."

멀어져가는 장씨의 뒷모습에서 우리나라 장년층의 현실을 읽을 수 있었다.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5060대라면 걱정없겠지만, 은퇴 후 번번한 돈벌이가 없는 이들에겐 하루살이가 곤욕일 수 있다. 정부가 올 하반기 추경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장년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역 개찰구에서 만난 영국인 커플을 역사 내에서 또 다시 만났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는 에나벨씨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를 찾았고, 내일이면 일본으로 떠난다./이봉준 기자



개찰구 주변을 돌아보니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외국인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영국에서 늦은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남자친구와 한국을 찾았다는 에나벨 씨는 "내일 출국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더 한국을 관광하기 위해 강원도 춘천으로 가려 한다. 알아보니 지하철을 통해 갈 수 있다길래 남자친구를 이끌고 나섰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10년 서울과 춘천을 오가는 경춘선이 개통되면서 최근까지 많은 이들이 지하철을 타고 주말이면 7호선 상봉역에서 춘천역까지 1시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 서울 뿐만 아니라 춘천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몇 번째 한국 방문이냐고 물으니 에나벨씨는 이번이 두 번째라고 밝혔다.

에나벨 씨는 "대학 때 친구들과 한국을 찾았었다. 당시 기억이 좋아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동북아시아 관광에 나섰고,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내일 일본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첫 차 출발시간 5분 전인 새벽 5시 35분. 불과 30분 만에 첫 차를 타기 위해 모인 시민들로 역내가 붐볐다. 한쪽에서 메트로신문을 읽는 70대 노인이 눈에 띄었다./이봉준 기자



강남행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를 지나 지하철을 타는 곳에 이른 기자는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이느라 피곤한 기운에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부쳤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진 기자의 앞에는 불과 몇 분전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5분. 10대 고등학생들부터 6070대 장노년층까지 첫 차를 타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노량진으로 공무원 학원 수강을 위해 집에서 나왔다는 한예진 씨(25)는 "이른 아침에 가지 않으면 학원 앞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며 "피곤하지만 지하철에서 자면서 가더라도 일찍 학원에 도착하기 위해 첫 차를 타곤 한다"고 말했다.

한 씨는 "오전 6시 30분 이전 지하철을 이용하면 기본요금도 20% 할인돼 일석이조"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부터 오전 6시 30분 이전 교통카드를 이용해 탑승하는 승객에 한해 기본요금을 20% 할인해 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를 이용하면 지하철은 1000원, 버스는 960원에 이용 가능하다.

청소업을 한다는 한미숙씨는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힘을 내야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일 새벽 첫 차에 오른다"고 말했다./이봉준 기자



40분이 되자 지하철이 큰 소리를 내며 역에 도착했다. 성수역에서 출발한 열차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일터나 학교, 학원을 찾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역삼역에서 단체로 내린 아주머니 중 한 분인 한미숙 씨(60대)는 "회사 청소업을 하고 있다"며 "이른 아침 출근해 오전 시간에 퇴근하는데, 같이 일하는 아줌마들이랑 언제나 첫 차를 탄다"고 말했다.

한 씨는 "추석엔 집에서 집안일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월요일부터 청소를 하러 나오느라 피곤하다"면서도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한 씨는 "그래도 함께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힘을 내야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일 새벽 첫 차에 오른다"고 덧붙였다.

술 냄새 풀풀 풍기는 20대 청춘들이 한두명 있을 것으로 예상한 기자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감에 오히려 위안이 됐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사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활기가 느껴졌다. 이 활기가 국내 경제와 산업 곳곳으로 퍼져 따듯한 온기를 전하길 바라며 첫 차를 타는 이들과 함께 기자도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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