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민심은 유난히 차가웠다. 설만 해도 지역별로 경기 체감이 달랐지만 이번 추석 민심은 "먹고 살기 힘들다"에 방점을 찍었다.
청년들은 취업난에 울상 짓고 있었다. 기성세대는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강했다. 한때 한국 경제를 견인한 조선, 석유화학의 끊없는 추락을 보면서 "더 이상 공업·산업단지 주민들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메트로신문이 올해 추석 민심을 점검해 봤다.
◆서울:겹악재에 시장상인 울상
서울 전통시장은 일 년에 두 차례있는 명절 대목을 보고 장사한다. 하지만 올해는 사람만 많을 뿐 정작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적었다. 더욱이 서울역 고가 폐쇄로 진입이 힘들어진 남대문 시장 상인들은 장사터를 옮길 생각도 하고 있다.
남대문 시장에서 한복을 파는 상인 최씨는 "과거에는 설과 추석에 고향에 가며 아이들에게 입힐 한복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젠 아니다"며 "이번 추석엔 상점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노점에서 간식거리를 먹고 가는 사람만 태반"이라고 인상을 썼다.
그릇 판매점은 운영하는 김모씨(52)는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 이후 교통이 불편해져 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며 "시장 이용객이 줄자 상인들 사이에서도 분쟁이 생겼다. 당장 장사가 힘들어졌으니 별 수 없지 않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경기, 일자리도 없고 질도 떨어지고
경기도 화성시에 거주하는 유모씨(28·남)는 추석 기간 고향을 찾지 않았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신분으로 친척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대학 졸업자의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경기까지 올라왔지만 취업난을 어딜 가든 마찬가지다.
1개월이면 어디든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유씨는 여전히 취업준비생이다. 4년제 졸업, 토익점수, 각종 자격증 등 여러 스펙을 쌓았지만 입사지원을 한 80곳의 회사 중 어느 곳도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직장을 잡아도 생활비 감당하기도 힘들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김모씨(25)는 "박봉이라 이직하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아직 경력이 안 될 뿐더러 매달 나가는 월세, 생활비가 부담스러워 차마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비, 주거비 등 물가는 고공행진인데 월급은 오르지 않아 생활은 궁핍해져만 간다.
실제 올해 하반기 대졸 신규공채를 진행하는 기업은 전체의 57.4%(146개사)로 절반에 머물렀다. 28.5%(76개사)는 채용 계획이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나 청년 취업난과 저성장의 흐름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충남, '가뭄'에 체감 경기 반토막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박씨는 "올해 논농사는 잘됐다고 하지만 폭염 때문에 과수원은 어려움이 많았다"며 "(아산에서는) 배방에 있는 삼성전자 빼고 다 불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소연했다.
국민소비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과일 농사까지 망쳐 지난해보다 더욱 어려운 한해를 보내게 됐다.
지하철 1호선이 아산에 들어선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온천으로 유명한 아산은 관광객이 방문하면 1박은 하는 것이 일반이었다. 하지만 지하철로 인해 '반나절 관광'이 성행, 온천 이외의 관광매출도 반토막 났다. 아산시는 시티투어를 운영하고 외암리민속 마을 등의 관좡지 기능을 강화했으나 상인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여전히 먹구름 속이다.
◆경상, 여당지지 기반 위태
경상도에서는 50대를 중심으로 여당 지지가 무너지고 있다. 과거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현 대통령을 칭했던 기성세대는 이제 "박근혜 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안동시에 거주하는 최모씨(53·남)는 "60~70대는 여전히 여당을 지지하겠지만, 50대부터 생각이 바뀌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경상도에 무슨 좋은 변화가 일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갑작스럽게 발표된 성주시 사드 배치가 여론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안성에 거주하는 50대 김모씨는 "친척 10여명이 벌초 마치고 정치 얘기를 했다"며 "80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대가 여당에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전남, 산단도 옛말 '관광투자'가 희망
전라남도 여수시는 더 이상 산업단지만으로 먹고 살 수 없게 됐다. 석유화학에 대한 증설·투자가 멈추며 협력업체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중동, 중국을 비롯한 석유 생산 국가들이 석유화학 공단까지 갖춰 국내 석유화학이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수시와 같이 인구의 상당수가 석유화학 산업단지에 의존하는 도시들은 비상이 걸렸다.
석유화학 단지 근무자인 안모씨(54·남)는 "석유화학 제품들이 대량생산하는데 비해 판매액수가 줄어든 것으로 안다"며 "이곳 산단에 입주한 기업들도 증설과 투자를 멈췄다. 여수시 인구의 상당수가 산단 협력사 직원이나 관련 근로자인데 증설·투자가 멈추니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미래에셋에서 여수 경도에 1조원대 관광지 투자를 계획한 것이 불황 돌파를 위한 마지막 희망이다.
◆제주, 중국인만 축제 소상공인은 울상
제주도의 관광매출은 매년 늘고 있지만 소상공인의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호텔, 카지노 등의 투자자들이 내륙이나 중국이기 때문에 관광수익을 제주도에서 소비하지 않고 외부로 가져간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소비가 제주도민에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
호텔 등도 리모델링을 예전만큼 하지 않아 관련 사업자들도 어려움에 빠졌다.
수족관을 운영하는 송모씨(49·남)는 "원주민만 부동산 판매로 어느 정도 수익을 보지 이외의 집 없고 땅 없는 소상공인들은 늘어나는 관광객에도 손만 빨고 있다"며 "호텔 등도 과거만큼 리모델링을 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힘들다. 관광객이 소비하는 돈도 육지나 중국으로 갈뿐 우리에게 떨어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