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 여파로 '물류대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한진해운 선박들이 세계 곳곳에 발이 묶이면서 선원들에 대한 신변 안전 문제는 물론 수출기업들의 피해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정부는 이도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걸었던 '대주주의 자구노력 없이는 추가 지원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는 것을 이제 와서 번복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 갇힌 선원들
한진해운 선박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이 묶이면서 선원들까지 마실 물과 식료품조차 부족한 열악한 상황에 처하자 노동조합이 시급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진해운 노조는 5일 성명을 내고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등 50여척이 입출항을 하지 못해 외항에서 무기한 대기 중에 있다"며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품 보급이 이뤄질 수 없어 선원들이 심각하게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선박은 개별회사의 소유물을 넘어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도 다른 나라에서 억류되거나 입항을 거부당하는 것은 국가적인 피해이자 망신"이라면서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해운회사에 운영자금을 확보하라고 주문하면서 선원들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선원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회사의 노력을 넘어서 국가의 명확한 지원계획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중소·중견기업 물류대란 장기화 우려
삼성, LG 등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출 물량이 많지 않은 중소·중견기업들은 한진해운발 물류 사태가 당장 피부로 와닿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어렵게 뚫어놓은 수출길이 더욱 좁아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중동 등에 소형가전을 수출하는 한 기업체 관계자는 "현재 영향을 받는 것은 없다"면서도 "(사태가) 길어질 경우 대체 물류수단 추가 확보 등 대안을 마련해야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물류비 인상 등 가뜩이나 수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용 증가도 우려된다"고 전했다.
특히 부산지역의 수출 중소기업들은 대체 선박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외 거래처를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5일 일본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A사는 "한진해운 사태로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온 거래처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며 "금융당국에서 이번 사태로 발생한 피해금액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신뢰를 잃은 기업과 누가 다시 거래를 하겠냐. 장기적으로 피해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일단 한번 거래처가 바뀌면 이를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마침 중소기업중앙회는 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해운 물류 주무부처 수장인 김영석 해양수산부장관과 간담회를 예정하고 있다. 당초엔 최근 이슈인 선박수리, 조선 등 조선업과 관련해 중소기업들의 애로를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추가로 불거진 해운물류 등 기업들의 수출길과 관련한 토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류대란 따른 피해 확산 '눈덩이'
물류대란에 따른 피해책임에 대한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진해운에 제품 운반을 맡긴 삼성, LG전자 등 국내 기업 외 월마트, 아마존, 이케아 등 세계적 업체들도 화물 지연에 대한 배상청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한진해운이 약속된 날짜에 화물을 운송하지 못할 경우 최대 140억달러(약 15조6000억원) 규모의 줄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려면 결국 한진해운이 해당 업체에 돈을 지급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해결방안이 없지만 회사에 자금이 바닥나고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자금지원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에 신규 자금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정부는 당장 화물 억류를 풀기 위해 하역운반비·장비임차료·유류비 등 2000억원 수준의 자금을 한진해운 조기 정상화를 위한 긴급피난자금으로 신속히 조성해야 한다"며 "오늘이라도 내외신 기자회견을 해 용선료·항만접안료를 정부가 보증한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가 여전히 한진그룹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어 사태는 더욱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이날 열린 해운업 관련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 논의를 토대로 협력업체 및 중소 화주 지원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조사 결과 한진해운과 상거래 관계가 있는 협력업체는 총 457곳, 채무액은 약 64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이 402곳으로 상당 부문을 차지했고, 이들의 상거래채권액은 업체당 평균 7000만원 수준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