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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인사동서 40년 구둣방 인생 '슈샤인 걸' 순덕씨의 독도 사랑

서울 인사동에서 40년 가깝게 구두닦이를 하면서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며 주변을 오가는 내국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민간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정순덕(78)씨 뒤로 '독도코리아(DOKDOKOREA)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사진=김승호 기자



[메트로신문 김승호 기자]서울 종로에서 인사동으로 가다가 오른쪽에 있는 낙원상가로 방향을 틀면 상가 초입에서 여느 모습과 다르지 않은 구둣방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구둣방과 주인인 정순덕씨에게는 뭔가 다른 향기가 난다. 구둣방 밖에는 영문으로 쓴 'DO YOU KNOW? DOKDO BELONGS TO KOREA'란 글귀가 눈에 띈다. '너는 아니? 독도는 한국에 속해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유난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인사동 한쪽에 있는 이 구둣방의 문구에 길을 오가는 외국인들의 눈길이 머물지 않을 수 없다.

구두를 닦고 있는 순덕씨도 같은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어렸을 때다. 할아버지께서 놋으로 만든 커다란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세수를 하시려는 찰나에 일본군과 앞잡이를 하던 동네 사람이 집에 들이닥쳤다. 다짜고짜 집에 있는 쇠붙이를 다 내놓으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께서 세수를 다 하고난 뒤 놋대야를 가져가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뺏어갔다. 그때를 잊지 못한다."

순덕씨는 1939년 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론 78세다. 순덕씨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버지 고향 전북 김제는 곡창지대로 소문난 곳이다. 그렇다보니 순덕씨가 어렸던 일제시대 후반기에는 일본이 군산을 통해 본국으로 쌀을 가져가기 위해 극심한 수탈을 당해야 했다. 그가 잊지 못하는 '놋대야 사건'도 그 연장선상이다.

당시 충격을 잊지 못하던 그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어린시절 슬픈 기억에서 비롯됐다.

"일본이 자꾸 독도를 지네들 땅이라고 하니 내가 화가 나더라. 그래서 시작했다."

순덕씨가 인사동에서 구두닦이를 시작한 것도 어느덧 40년이 다 돼간다. 인사동과 종로 역사의 산 증인이다.

1972년 생인 딸이 태어나기 전에 남편을 보내고 먹고 살기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하다 자리를 잡은 것이 지금의 구둣방이다.

"그때는 경찰서 소년계에서 (구둣방)허가를 내주던 시절이었지. 구두 한켤레 닦는데 150원이었어. 인사동 입구에 있었던 만수상회는 지금 공원으로 바뀌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들었던 허리우드극장도 없어졌지."

순덕씨가 당시를 떠올렸다.

남편 없이 남매를 키우다보니 억척스럽게 일만 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주일 내내 돈을 벌어야 했다.

"인근 가게에서 물 한주전자를 얻어 마시면 그렇게 배부를 수가 없었어. 열심히 구두를 닦았지. 그때 인사동 인심은 따뜻했어. 없이 살아도 훈훈함이 느껴졌지."

팔순을 바라보는 순덕씨에게는 주마등같은 시간이다.

그 사이 남매는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큰 아들은 교수가 됐다.

오랫동안 한 곳에서 구두를 닦다보니 유명인들도 많이 만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해수부장관 시절 오가다 잠깐씩 들려 말벗이 됐고, 종로에서 국회의원을 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국회의원 지구당사 이전기념'이라고 찍힌 노란컵은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구둣방 입구 오른쪽에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착하고 귀한 마음입니다…'라고 쓴 글이 보인다.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수성 전 서울대 총장이 2010년 6월1일에 남기고 간 친필이다. '현모는 효자를 만들고 효자는 사회의 동량재(棟梁材)가 되었구료! '란 글도 눈에 들어온다.

자식들 다 키우고, 한 숨을 쉴 수 있게 되면서 어린시절 강렬했던 기억에 이끌려 시작한 것이 바로 '독도사랑'이다.

"한 번은 지나가던 일본인이 묻더라. 정부에서 돈 받고 이렇게 하느냐고. 그래서 내가 '순수한 마음에 이러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일본인이 '애국심이 투철하다'며 웃고 가더라."

그렇다고 순덕씨가 요란하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다. 구두를 닦으면서 손님들에게, 오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과 얘기를 하면서 독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전부다.

"강연 요청도 많이 왔지. 물품을 좀 팔아보겠느냐는 제안도 있었어. 다 고사했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순덕씨는 독도도 한번 못가봤다. 먹고 살려다보니 갈 생각도 하지 못했단다.

이같은 순덕씨의 이야기는 TV 드라마의 소재가 돼 전파를 타기도 했다. 1998년 당시 155부작이나 방영된 SBS '엄마의 딸'이다. 역시 구두닦이를 하면서 네 명의 딸을 키워낸 어머니와 딸들의 이야기다. 극중 정혜선씨가 순덕씨의 역할이었다.

"내가 독도에 가면 뭐하겠어.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구두닦으며 이렇게 건강하게 살면 되지."

40년 가까이 닦던 구두도 이젠 힘이 부치는지 순덕씨는 요즘엔 일주일에 사흘만 구둣방으로 나온다. 그가 나오는 날이면 구둣방은 동네 사랑방이 된다. 손님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오다 가다 커피 한 잔씩을 마시며 서로 말 벗이 된다. 그러다보니 딸이 사다주는 믹스커피는 하루에 100잔 넘게 나가기 일쑤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떠나고, 풍경은 변해도 순덕씨는 늘 그렇게 '독도'를 이야기하며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사동에 있는 그의 구둣방을 지날 때면 '슈 샤인 걸' 순덕씨 이름을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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