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 2·3세 아산 경영 철학 물려받아
[메트로신문 양성운 기자] '적당히의 그물 사이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빠져 나가게 하는 것 이상 우매한 짓은 없다.'
아산(峨山)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타계했지만 그의 경영 철학은 계승되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2세와 3세는 강한 집념과 도전정신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강한 결단력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현대그룹을 모체로 했던 계열사들은 그룹별로 분리되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범현대가의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출범시킨 현대차그룹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강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특히 3세 경영의 대표주자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5000억원의 개발 비용을 투자해 5년간 준비한 글로벌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제철의 고로 화입식에 참석해 제1고로에 화입하고 있다.
◆정몽구 '뚝심 경영' 세계 시장서 돌풍
아산의 DNA를 불려받은 정몽구 회장은 위기 때마다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돌파해 나갔다.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3저 호황을 맞아 레저 붐이 일었다. 정몽구 회장(당시 현대정공 사장)은 1991년 4륜 구동 SUV '갤로퍼'로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당시 경쟁 모델인 쌍용차 코란도, 아시아자동차의 락스타와 차별화된 디자인과 엔진 성능으로 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 출시 두달만에 매출 330억원을 올린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SUV라는 카테고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갤로퍼는 정몽구 회장이 그룹의 후계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정 회장은 1999년 미국을 방문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품질이 뒷받침되지 못해 리콜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던 것. 현대차는 당시 미국 유명 토크쇼에서 조롱의 대상이 됐을 정도였다.
출장에서 돌아온 정몽구 회장은 품질총괄본부를 발족했다. 그해 정 회장은 '10년, 10만 마일 보증'을 내세웠다. 당시만 해도 '2년, 2만4000마일 보증'이 일반적이었으나 소비자들에게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파격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98년 9만1217대였던 판매량은 1999년 16만3190대로 급증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현대차의 발전은 속도위반 딱지를 뗄 정도'라고 평가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중형차 시장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2004년 미국 JD파워 초기품질조사에서 쏘나타는 중형차 부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올해 1∼7월 판매량 기준으로 제네시스는 미드럭셔리 부문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에 이어 3위에 올랐다. 2000년 전체 판매량 중 5%였던 레저용차량(RV) 및 대형차 비중은 현재 26.8%까지 늘었다.
현대차는 2005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 연산 3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준공한 뒤 연평균 6%대 성장을 거듭했다.
2008년에는 미국에 닥친 금융위기로 냉각된 소비심리는 제조업체들에 위기로 다가왔다. 경쟁사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긴축경영 체제에 돌입했지만 현대차는 2009년 초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소비자가 차를 구매한 지 1년 이내에 실직하면 차를 무상으로 반납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덕분에 미국 내에서 현대차의 이미지는 높아졌고 성과로 돌아왔다. 2009년 미국 신차 판매량은 2008년 대비 21.4% 감소하며 30여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현대차는 오히려 판매가 8.3% 늘었다. 정몽구 회장의 '뚝심 경영'이 빛을 발한 사례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4년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에 이어 2006년 INI 스틸을 현대제철로 사명을 변경해 출범시켰다. 사실, 현대제철은 지난 2004년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인수하기 전까지 업계 1위 포스코는 물론 타 대형 철강사에 비해 외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이 경영을 잡은 이후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합병과 M&A를 성사시키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종합제철소로 부상했다.
이어 2011년 현대그룹의 모기업 현대건설을 품에 안으며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철강에서 건설까지, 금융과 IT 서비스'를 아우르며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토록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아산의 꿈'을 실현시켰다. 덕분에 현대차는 글로벌 주요 자동차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자동차용 강판을 자체 개발·생산할 수 있다. 기초 소재 단계부터 차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3세 정의선도 아산의 도전정신 이어받아
정주영 명예회장이 '도전 정신'으로 기업을 만들었다면 2세 정몽구 회장은 '뚝심 경영'으로 중흥기를 이끌었다. 3세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도전·열정'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 4일 글로벌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 공략을 위해 5000억원의 개발 비용을 투자해 5년간 준비한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0년부터 매년 10% 이상 성장하는 고급차 시장에서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을 앞세워 정면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정의선 부회장이 자신의 계획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혹독한 경영수업과 체계적인 교육을 거쳤기에 가능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밥상머리' 교육과, 이어진 정몽구 회장의 가정교육을 통해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철저히 습득했다는 것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1999년 현대자동차 구매실장으로 입사한 후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에서 영업과 기획 업무를 총괄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정몽구 회장을 보좌하며 회사 성장을 견인했다.
덕분에 현대가의 엄격한 교육을 받은 현대자동차그룹의 3세 정의선 부회장은 비슷한 연령의 재벌 2~4세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명이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