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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소영의 명화 에세이] 누군가에게는 '초록 요정', 누군가에게는 '에메랄드 지옥'-압생트

그림1-앙리 로트렉/Portrait of Vincent van Gogh(압생트를 마시는 반 고흐)/1887



19세기 말 예술가들의 일상에는 늘 '초록요정'이라는 술이 함께했다. 예술가들은 이 초록요정을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고, 초록요정을 마시고 황홀한 영감을 얻었다. 고흐, 드가, 피카소, 랭보, 보들레르, 모파상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초록요정을 사랑했다. 보들레르는 초록요정에서 '악의 꽃'의 영감을 얻었고, 로트렉은 초록요정을 마시는 반 고흐를 그렸으며, 오스카 와일드는 초록요정을 마신 뒤 튤립이 피어나는 것을 바닥에서 한없이 지켜보았다고 한다. 많은 예술가들의 심장을 떨리게 했던 이 초록요정은 바로 '압생트'라는 술이다.

그림2-장베로/Absinthe Drinkers/1908/



19세기 말 화려했던 파리의 벨에포크 시대를 화폭에 담은 화가 장베로의 그림이다. 그림 속 두 남녀는 함께 앉아있지만 각자의 노고를 풀러 온 듯하다. 일상의 고단함을 압생트 한 잔에 기대 녹이고 있다.

압생트는 향쑥의 라틴어인 압신티움(Artemisia Absinthium)에서 유래했다. 주된 원료를 쑥과의 하나인 웜우드에서 추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연두색 환각효과를 일으키는 화학성분이 포함된다. 쌉싸름한 쑥의 맛을 그대로 먹으면 너무 쓰니 물과 설탕으로 희석해서 마신다. 돈이 없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72도의 도수를 지닌 초록 요정의 매력은 치명적이었다. 조금만 먹어도 독해 잘 취하기도 했겠거니와 가격이 싸니 와인보다 몇 배나 고마운 술이었다.

우리는 흔히 예술가들의 연인에게 '뮤즈'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만이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만은 아닐 터, 그들의 뮤즈는 때로는 물건에, 장소에 있기도 한다. 마치 많은 예술가들이 아름다운 술 '초록요정, 압생트'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처럼 말이다.

이런 '초록요정'의 또 다른 별명은 '에메랄드 지옥'이다. 요정에서 지옥으로 변하는 과정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사람들은 압생트로 인해 정신착란증세가 일어나거나 시각장애가 생기기 시작했다. 반 고흐 역시 압생트 중독으로 인해 녹색괴물의 환영을 보고 귀를 자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905년, 한 청년이 압생트를 마시고 일가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세상이 발칵 뒤집힌다. 그 이후인 1910년 스위스가 먼저 압생트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고 1915년, 프랑스 역시 압생트의 제조와 판매 금지령을 내린다. 1980년대에 유럽연합이 다시 제조와 판매를 허락하고 그렇게 100년이 흘러 2005년에 들어와 다시 도수가 낮아진 압생트가 스위스에서부터 판매가 시작된다. (항간에서는 와인의 판매량이 압생트로 인해 줄어들자 일부러 금지령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세상 모든 유혹은 치명적이다. 고혹하리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그렇고, 독을 품은 버섯이 그렇다. 어쩌면 유혹의 반대말은 감내해야할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 유혹이 요정으로 바뀔지, 지옥으로 바뀔지는 수용하는 자의 관점에 달려있다. 나에게 그 옛날 예술가들이 마셨던 압생트와 같은 도수의 술을 마실 기회가 온다면, 거뜬히 한 잔 비워내고 싶다. 과연 나에게도 보들레르와 같은 예술적 영감이 피어날까, 나도 고흐처럼 세상이 온통 너울져 보일까…. 그들을 환상의 세계로 당도하게 한 독한 압생트 한 잔이 생각나는 오후다.

그림3-빅토르 올리바/The Green Fairy occasionally visits around the holidays.(The Absinthe Drinker)/1901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그림은 위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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