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 재산권 침해" vs "수십 년간 유지된 제도"
[메트로신문 김종훈 기자] 납세신고에 필요한 세무조정 계산서를 세무사 외에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자격증 소지자도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 세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전문가 집단 간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의견이 강했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외부 세무전문가만 세무조정 계산서를 쓰도록 한 '외부세무조정 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납세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전문지식을 갖춘 누구나 계약의 자유 등을 줘야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하면서다.
19일 기획재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법인세·소득세법 개정안에 세무조정 계산서 작성을 세무사 외에 세무사 등록을 한 공인회계사 및 변호사가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새로 추가됐다.
정부가 이 같은 방향으로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대법원이 세무조정 계산서를 세무사만 작성할 수 있도록 규정된 기존 법인세·소득세법 시행령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 시행령이 세무사법 등 상위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세무조정 계산서를 누구나 직접 작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기본권 침해로 판단하면서 상위법에 세무조정 계산서를 세무 전문가만 작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작성권한을 완전히 개방하는 쪽으로 가지 않고 법인세·소득세법 개정안에 작성 주체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는 길을 택했다.
작성 주체가 기존 시행령에 세무사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던 것을 바꾸어 공인회계사와 변호사에게도 문호를 개방키로 한 것이다.
그동안 변호사들은 세무 분야로 업무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세무사만 세무조정 계산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해 왔다.
이번 대법원 판단도 대구 한 법무법인이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상대로 이런 내용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뤄졌다.
그동안 이 같은 논란은 전문가 집단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대법원이 외부 세무전문가만 세무조정 계산서를 쓰도록 한 '외부세무조정 제도'에 대해 납세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는데도 정부는 특정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작성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 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려고 해 기본권 제약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 8월의 판결문에서 "납세 의무자가 세무 관련 전문지식을 갖고 있거나 사업체 내부에 전문 인력을 보유해 외부전문가에게 세무조정 계산서의 작성을 맡길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스스로 작성할 기회를 차단한 것은 재산권 및 계약의 자유 등을 제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세무조정 계산서를 세무사를 통해 작성하지 않고 국세청에 제출하면 무신고 가산세를 물어야 한다.
한국경영기술지도사회 관계자는 "납세자가 스스로 세무조정 계산서를 작성할 수 있는 데도 법으로 이를 제한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에 따른 위헌"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단 취지는 외부세무조정 제도 자체의 문제보다는 법에 근거를 명확히 하라는 데 중점을 둔 판단"이라면서 "대법원이 그런 판단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3권 분리 원칙에 따라 국회 논의를 통해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부세무조정 제도는 수십 년간 유지돼 온 것"이라며 "세무조정 계산서를 전문가가 작성하지 않으면 세무 행정에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법으로 명문화를 추진하는 것이 대법원의 기본권을 제약한다는 논리와 대치되면서 변호사와 회계사-세무사간의 갈등은 국회로 바톤이 넘어가면서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