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윤정원기자] 예전에는 누군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정원'이라는 내 이름을 소개하면 반응이 대개 비슷했다. 누구나 알만한 식품브랜드와 나를 묶곤 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반응이 크게 달라졌다. "궁금한 게 참 많은데 너에 대해 속 시원히 얘기 좀 해달라"는 식의 농담 아닌 농담을 듣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의 해킹팀사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지난 1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해킹 프로그램에 대해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각각 10명씩 20명분의 프로그램을 구입했고 모두 북한 공작원을 상대로 쓰거나 연구·개발용으로 썼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정원은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가 출시될 때마다 해킹 가능 여부를 해킹팀사에 문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카카오톡과 보이스톡(카카오톡 음성전화) 대화 내용을 알아낼 수 있는 기능 또한 물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다. 해킹 프로그램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여기에 국정원 직원 임 모 씨의 죽음까지 더해지니 의심은 무한대로 증폭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안철수 의원을 필두로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국정원에 30여 개의 증거 자료를 요청하고 있지만 국정원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생명은 기밀 유지에 있기에 국정원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추락하는 상황에서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는 제출함이 옳다는 생각이다.
국가의 수장 역시 이 같은 사태에 대한 표명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박 대통령은 사태가 악화일로를 걸어도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국정원 해킹 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4대개혁에 대해서만 역설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신속한 입장 발표와 대응은 본 사례가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