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조한진 기자] 삼성과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머트의 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삼성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위해, 엘리엇은 이 합병의 반대를 위해 세를 불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결정이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 체제를 다지려는 삼성은 주식시장에서 삼성물산이 가치가 저평가된 시점에서 합병을 결정했다.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부회장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엘리엇은 '주주 이익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했다고 발표한 엘리엇은 9일 합병안 진행을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이사진들에 대한 주주총회결의금지 등의 가처분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실제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가 저평가된 상황에서 합병이 결정돼 일반 주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 대 0.35다. 경제개혁연대도 최근 논평을 통해 "삼성물산의 기존 주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명확한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호'의 방향타를 잡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다. 승계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나왔지만 이 부회장의 역할이 막중하다.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삼성을 이끌어야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삼성이라 해도 핵심 사업결정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오너의 역할은 중요하다. 1년 넘게 병상에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한 마디에 한국 사회가 귀 기울였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삼성과 엘리엇의 대결은 장기전으로 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우선 양측은 우호지분확보를 위한 물밑작업과 다음달 17일 주주총회에서의 표대결을 앞두고 있다. 여기까지 삼성의 뜻대로 된다고 해도 논란의 불씨가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소송을 낸 엘리엇이 주주총회 결과에 불복해 법정 다툼을 외국으로 끌고 갈 여지가 충분하다. 삼성물산은 영국 런던 증시에 주식예탁증서(DR)를 상장한 상태다. 엘리엇이 불합리한 합병으로 주주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런던법원에 삼성물산을 제소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합병을 결의한 임원들의 업무상배임죄까지 문제 삼을 수 있다.
엘리엇이 해외에서 삼성과 소송전을 벌일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쪽은 삼성이 될 공산이 크다. 승계를 위해 주주이익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덧칠해질 수도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은 주주가치에 대한 보장이 철저한 경향이 있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최근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삼성의 간판인 삼성전자가 7위에 올랐다. 시가총액 세계 1위 애플과 소송전을 벌이고, 제품으로 대결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에서 사실상 삼성이 유일하다.
최근 일부에서는 미국계 투기 자본이 삼성을 공격한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기업인 삼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전 세계를 상대하고 있다. 즉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기업운영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삼성은 대의명분에서 엘리엇에 밀리고 있다. 삼성물산 일부 소액 주주들은 엘리엇에 힘을 실어주자며 주주의결권 위임 등을 얘기하고 있다. 비상이 걸린 삼성은 표 이탈 방지를 위해 고위층이 직접 해외주주들을 단속하는 등 우호지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있다.
삼성이 엘리엇의 공격을 막고, 그룹 전체의 미래가치를 생각한다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기업가치에 부합하는 합병비율 재조정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삼성이 결정을 번복한다고 해도 창피한 일이 아니다. 합병회사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은 다소 줄 수 있지만 '이재용의 삼성'이 더 큰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삼성의 3대 승계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수뇌부도 삼성의 미래가치 훼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냉철하고 빠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