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조한진 기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가운데 상장사의 합병비율을 정하는 관련 제도에 심각한 허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장사의 경우 합병가액을 기업 본연의 자산 및 수익가치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상장사의 경우에는 단순히 합병계약 당시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정하는데, 제일모직처럼 테마성 수급에 의해 주가가 뻥튀기된 경우 자산가치가 훤씬 많은 상대기업 주주들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주주들이 불이익을 받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근본적으론 이런 제도적 허점에 기인한다.
8일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지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합병가액은 △ 합병계약일(기산일) 직전 1개월간 종가평균 △1주일간 종가평균 △기산일 전일의 종가를 가중산술평균한 금액에서 10% 할증 또는 할인한 금액으로 계산한다. 이 합병가액을 바탕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한다.
지난달 26일 합병 공시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가액은 1주당 각각 15만9294원, 5만5767원이었다. 이를 근거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 0.35로 정해졌다. 그러나 제일모직이 비상장사 였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비상장사 제일모직과 상장사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대등하거나 오히려 삼성물산의 가치가 더 높아 질 수 있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5)은 비상장사의 경우 합병가액을 회사의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 산술평균한 가액을 기준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이 합병공시에서 밝힌 제일모직의 자산총계는 8조1833억원인데 비해 삼성물산은 이의 3배가 넘는 26조1556억원이다.
총부채를 뺀 총자본(1분기말 기준)도 제일모직이 4조7119억원인데, 삼성물산은 역시 이의 3배인 13조9405억원이다. 자산가치만 볼 경우에는 두 회사의 합병비율이 되레 삼성물산 3, 제일모직 1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수익가치는 보다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옛 에버랜드인 제일모직은 지난해 12월18일 상장됐다. 만약 제일모직이 비상장 상태에서 이번 합병을 추진했다면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회계사는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 일가의 지분가치 뻥튀기에 대한 엄청한 비난 여론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지난해말 제일모직 상장을 강행한 이유를 이번 합병계약을 보면서 짐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제일모직이 비상장 상태에서 삼성물산 등과 합병을 했으면 이재용 부회장 일가가 통합법인에서 확보할 지분율은 현재에 비해 한참 떨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엘리엇이 나름 자신있는 태도로 삼성을 공격하는 것도 이런 제도적 허점에 대한 검토가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엘리엇은 여차하면 이번 건을 법정으로까지 끌고 갈 태세다. 삼성물산은 영국 런던 증시에 주식예탁증서(DR)를 상장해놓은 상태다.
엘리엇은 이번 합병건이 7월17일 주총에서 통과되더라도 삼성물산 주주들이 합병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다는 논리로 삼성물산 이사회 멤버 등을 런던법원에 제소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과 미국 등 영미법계 상법은 독일법계인 우리나라보다 주주가치 보호에 대해 보다 철저한 경향이 있다.
엘리엇은 이번 합병계약에서 삼성물산의 우선주 합병비율을 보통주와 같이 제일모직 대비 0.35로 평가한 것은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우선주가 있지만 제일모직은 우선주가 없는 점이 논란의 발단이다.
즉 우선주만 보면 제일모직은 비상장 상태이고 따라서 우선주의 기준가격은 비상장사에 준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데, 삼성측이 이를 상장주인 보통주의 시가를 기준으로 처리한 것은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시장상황과 기업가치에 비해 합병비율이 터무니 없이 낮다는 것은 앨리엇의 입장일 뿐"이라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결정할 때 결정한 보통주와 우선주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의거해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