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샌 안드레아스'./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재난영화를 볼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재난 상황을 재현한 스펙터클한 영상은 그 자체로는 시각적인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스펙터클을 마냥 즐기기에는 마음이 불편하다. 재난 속에 참혹한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난영화는 몇 가지 '꼼수'로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숨긴다.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이타닉'처럼 재난에 처한 인물의 드라마를 강조하는 방식도 그 중 하나다. 혹은 '2012'처럼 물량공세로 만들어낸 재난의 풍경만을 보여주는 방법도 있다. 이런 영화에서는 재난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조차 순식간의 일로 묘사할 뿐이다.
'샌 안드레아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미국 서부를 강타한 대지진 속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온 주인공 레이(드웨인 존슨)와 엠마(칼라 구기노) 부부는 지진과 쓰나미로 폐허가 돼버린 시내를 돌아다니며 딸을 찾는다. 그런데 이 장면은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엄청난 재난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이들 주변에는 안타깝게 죽은 이들의 시체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설득력을 해칠 정도로 낯선 풍경이다.
영화 '샌 안드레아스'./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재난의 스케일만 놓고 본다면 '샌 안드레아스'는 여느 재난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후버 댐이 무너지고 로스앤젤레스 전역이흔들리며 금문교가 무너지고 폐허로 변해가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좀처럼 눈을 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재난의 스케일에 비해 인물들의 드라마는 다소 빈약하다. 재난 속에서 관계를 회복해가는 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새로움을 찾기도 힘들다. 구조대원인 주인공이 가족을 구한다는 이유로 구조 헬기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처럼 납득하기 힘든 설정도 눈에 밟힌다.
그러나 이는 '샌 안드레아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재난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는 그것을 알기에 그저 공식대로 이야기를 풀어냈을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재난영화. '샌 안드레아스'의 목표는 딱 여기까지다. 12세 이상 관람가. 6월 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