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과 어린이날로 이어졌던 달콤한 휴일이 끝나자 예전 같은 일상이 되찾아 왔다. 극장가에서는 그동안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피해 몸을 움츠렸던 한국영화가 기지개를 펴고 관객 앞에 나설 준비를 하면서 여느 때보다 바쁜 날이 이어지고 있다. '악의 연대기' '간신' '무뢰한' 등이 차례로 언론시사회를 갖고 본격적인 개봉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무뢰한'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은 아쉬움이 컸다. '악의 연대기'는 전반적으로 매끈한 연출이 눈에 띄었지만 반전에 지나치게 얽매인 느낌이었다. 캐릭터의 대결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던 '끝까지 간다'와 비교해 보면 '악의 연대기'의 한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간신'은 민규동 감독이 그려내는 권력과 욕망의 지옥도가 흥미로웠지만 다소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각각 투자와 배급에 참여한 작품이다. 이들 두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아쉬움은 상업적인 결과를 노린 기획영화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다만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두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 경찰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 그리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두 영화 공히 지금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영화의 두 주인공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악의 연대기'에서 손현주가 연기한 주인공 최창식 반장은 후배들에게 신임 받는 경찰서 강력반장이지만 알고 보면 성과를 위해서는 작은 비리 정도는 눈 감으며 윗사람들에게도 적당히 꼬리를 내릴 줄 아는 처세술에 능한 인물이다. 공정한 수사를 신념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행동은 그렇지 못한 최창식 반장을 통해 영화는 사회 초년생 시절의 순수함을 뒤로 한 채 세상의 때가 타게 되는 현대인의 비애를 이야기한다.
'간신'에서 주지훈이 연기한 임숭재는 다른 신하들 입장에서는 간신이지만 왕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충신인 인물이다. 임숭재는 왕의 욕망을 예리하게 포착해냄으로써 자신이 지닌 권세를 유지하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임숭재는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권력 앞에 머리를 수그릴 때도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창식 반장과 임숭재를 과연 영화에서나 볼 인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씁쓸함이 마음 한 구석에 남는 것은 이들의 모습이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두 작품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각기 다른 장르와 방식으로 한국사회의 단면을 담아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이를 영화적으로 더 잘 풀어내지 못했다는 점이야말로 두 영화에 대한 가장 큰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