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성, 비특이성 질환 구분 이론적 타당성 없어
대한예방의학회·한국역학회 폐암 소송 특별위원회, 13일 의견서 발표
담뱃갑 흡연 경고그림 시안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제동이 걸렸던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법안(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이 법안은 담배 제조사가 담뱃갑 앞뒷면 면적의 50% 이상을 경고그림과 경고문구로 채우고 이 가운데 경고그림의 비율이 30%를 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부의 연구용역 의뢰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예시로 만든 담뱃갑 흡연 경고 그림 시안. 보건복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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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방의학회(이사장 이원철)·한국역학회(회장 최보율) 담배와 폐암 소송 관련 특별위원회는 13일 흡연이 폐암 위험을 21.7배 높인다는 의견서를 내고 담배회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특별위원회의 의견서가 담배소송 4차 심리를 이틀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재판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의견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법원은 질병을 특이성 질환과 비특이성 질환으로 구분하고, 폐암을 비특이성 질환에 포함시키고 있다. 특이성 질환은 하나의 요인에 의해 발생하여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대응하는 질환인 반면, 비특이성 질환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위원회는 "특이성 질환과 비특이성 질환의 구분은 학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구분이라고 지적하면서 단일 원인에 의한 필요충분조건을 가지는 질환은 없다"고 밝혔다.
특별위원회는 또 "우리나라 대법원이 제시한 특이성 질병에 대한 정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병인(원인)과 질병 발병(결과)이 명확하게 대응'하는 질병으로 규정하더라도 이번 담배소송의 대상군, 즉, 소세포 폐암, 편평상피세포 폐암, 편평상피세포 후두암, 그리고 흡연력이 20갑 이상이면서 흡연기간이 30년 이상인 환자의 경우 이와 같은 '특이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기존 국내 연구결과를 토대로 할 때, 비흡연자 대비 현재 흡연자의 소세포 폐암 발생의 상대위험도는 21.7배 이상, 편평상피세포 폐암 발생의 상대위험도는 11.7배, 후두암의 경우 비흡연자 대비 흡연자는 후두암 상대위험도가 5.4배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이용하여 소세포 폐암, 편평상피세포 폐암, 후두암에 대한 흡연자의 '폐암' 발생 기여위험분율을 계산하면, 각각 95.4%, 91.5%, 그리고 81.5%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는 그동안 담배소송에서 논의되었던 수치들보다 매우 높은 것이다.
담배회사측은 흡연과 폐암의 관련성에 대한 근거가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얻어진 것으로서 이를 개인의 인과성에 대한 정보로 활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특별위원회는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은 인구집단 대상 연구뿐만 아니라, 동물실험, 개인 환자에서의 관찰 결과, 실험실적 연구 등 다양한 연구를 통하여 확립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즉,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인구집단에서 나왔으므로 개인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담배 회사측의 주장이 실천적으로도 큰 문제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특별위원원회는 "담배 회사 측이 특이성 질환 사례로 열거하는 결핵이나 콜레라도 특정 병원체 감염뿐만 아니라 면역, 영양상태, 감염자 위생 조건 등 여러 환경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며 "특이성, 비특이성 질환 구분이 이론적 타당성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현재 담배소송 대상인 소세포 폐암 등은 기존 담배소송 대상이었던 암 종류와 달리 흡연에 따른 기여위험분율이 80~90% 이상으로 매우 높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국내외 담배 회사인 케이티엔지(KT&G), 필립모리스코리아, BAT코리아를 상대로 537억원 규모 흡연 피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담배와 폐암의 역학 관계를 주요 증거로 제시했다.
국내 보건 전문가들이 흡연과 관련해 역학 결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배경은 담배소송의 흐름을 바꿀 열쇠로 보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담배사업법은 합헌이다"고 판결했다. 담배의 제조나 판매 등에 관한 사항을 명시한 담배사업법은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결정문이었다. 헌재는 "흡연피해자와 의료인 등이 담배사업법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직접 흡연자의 심판청구는 기각하고, 간접흡연자의 청구는 각하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현재로서는 담배와 폐암 등 질병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거나 흡연자 스스로 흡연 여부를 결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의존성이 높아서 국가가 개입해 담배의 제조나 판매 자체를 금지해야만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담배사업법에서 담배 성분 표시나 경고문구 표시 등 여러 규제를 통해 직접 흡연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