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소설·연극·뮤지컬·드라마·극영화는 기본적으로 서사 형식을 취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로 그려내는 개연성은 서사 형식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이 개연성이 꼭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비현실적인 설정이라도 하나의 작품 안에서 나름의 근거를 갖추고 설득력을 지닌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때때로 사극영화를 둘러싼 역사적 고증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고는 한다. 역사적인 고증의 문제가 작품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작품 내에서의 설정 속에 창작자의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던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가 지난 21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공개됐다. 2012년 개봉한 '어벤져스' 이후 마블 스튜디오 작품에 대한 높아진 인기, 그리고 지난해 한국 촬영으로 생겨난 관심과 궁금증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무척 높았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공개된 뒤 엇갈린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토록 많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벤져스2'는 그 화제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예고편./영상캡처
그러나 대부분의 반응이 영화 속 한국 장면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의아하다. '어벤져스2'라는 영화 전체를 보고 영화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영화에 담긴 서울 장면만을 놓고 영화를 평가하는 느낌이다. 심지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개봉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영화 속 한국 장면에 대한 경제적인 이익까지 논하고 있다. 흥행 성적이나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계산기부터 꺼내든 모양새다.
'어벤져스2'는 크게 4개의 공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의 초반과 후반부를 장식하는 가상의 동유럽 국가 소코비아,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뉴욕 전투 이후 새롭게 세운 어벤져스 타워를 포함한 미국, 마블 코믹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가상의 아프리카 나라 와칸다, 그리고 서울이다. 실제 촬영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국의 서울과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방글라데시, 뉴욕 등지에서 진행됐다. 영화에 담긴 서울 촬영 분량은 20분 정도로 다른 공간에 비해 적지도 많지도 않는 수준이다.
전작이 뉴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쳤던 것과 달리 '어벤져스2'는 다국적 무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것은 영화 속 슈퍼히어로의 활동 범위를 전 지구적으로 넓히겠다는 의도다. 그 가운데에 서울이 포함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마블 코믹스 팬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로 여겨질 비전(폴 베타니)이 탄생하는 공간이 서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존재감을 어필할 만하다.
물론 영화에 묘사되는 서울의 풍경이 한국인의 시선에서는 아쉽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액션의 배경으로 등장하다 보니 한국적인 색깔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생긴다. 영화에 등장하는 지하철의 좌석 배치가 실제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다르다는 점도 옥에 티다. 지난해 유난히 떠들썩했던 한국 촬영의 기억을 떠올리면 '어벤져스2'에 담긴 서울 장면에 대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영화 속 서울의 묘사가 현실과 다르다고 해서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영화에 담긴 서울이 '한국인이 바라보는' 서울이 아닌 '외국인이 바라보는' 서울이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인을 타깃으로 삼는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 고유의 색깔이 담기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욕심 아닐까. 그럴 의도였다면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 우디 앨런 감독을 기용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오히려 '어벤져스2'에 담긴 서울의 풍경이 할리우드의 시선으로 담아낸 한국의 제대로 된 첫 번째 모습이라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그리고 영화 속 서울에 대한 국내 반응은 물론 국외 반응까지 살펴본 뒤에야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효과는 영화가 개봉한 뒤 계산해도 충분히 늦지 않다.
무엇보다도 '어벤져스2'는 단순히 영화에 담긴 서울 촬영 장면만으로 평가할 작품이 아니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벤져스2'는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꾸준히 이어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다. 말만 무성했던 영화가 23일 마침내 개봉한다. 이제 관객이 보고 영화를 평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