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협의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모호한 표현을 삽입하고 이를 '공동 기자회견'의 형식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마치 의협이 원격진료 허용 정책과 투자활성화 대책 등 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에 동의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 정부의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이번 논의 결과를 의협 협상단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간의 일차의료살리기협의체 논의를 중단하고 합의 내용도 무효화할 것'이라며 협박이라고 할 수 있는 압박을 가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발표된 의료발전협의회의 협의 내용이 복지부의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가지고 있던 것을 뺏길 수 있는 '갑을' 관계의 새로운 확인인 셈이다.
#2 "9일 아침 갑작스럽게 새마을금고로부터 '정치적인 성격의 행사라 대관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 2일 대관비를 전액 지불한 상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외압이 개입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1월 11일과 12일 양일간 충남 천안시 새마을금고연수원을 대관해 '전국의사 총파업 출정식'을 준비 중이던 의협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의 실무자인 방상혁 간사의 말이다. 당시 새마을금고의 대관 취소 통보 후 노환규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 세우려는 의사들의 의지를 정부가 유치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라며 정부 외압설을 제기했다. 갑에게 도전하는 을의 움직임을 막기 위한 갑의 압박.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보건의료계에도 갑을 관계가 살아있다는 것을, 그것도 정부가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장면인 것이다.
◆돈줄 쥐고 있는 정부의 갑질
지난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건의료계에 만연한 정부의 갑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하균 전 미래희망연대 국회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에서 매년 건보공단과 보건의료단체 간 수가 협상이 결렬되는 것은 보건의료단체에 페널티를 주는 정부의 관행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지난 10년간 열린 수가 협상에서 딱 한 번 건보공단과 보건의료단체의 계약이 체결됐을 뿐 나머지 9번의 수가는 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결정됐다. 이는 건보공단이 수가 계약을 하지 않고 건정심에 넘기면 보건의료단체가 요구하는 수가 인상률을 낮출 수 있는 페널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갑의 횡포로 보건의료단체가 수가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의협 한 관계자는 "수가 협상의 규칙을 어기거나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 페널티를 줘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공급자 단체가 건보공단보다 높은 협상안을 제시했다고 불이익을 받아왔다. 계약이 아닌 명백한 갑과 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페널티로 인해 대한병원협회는 2010년 10월 건보공단이 제시한 1% 인상안을 받아들였으며 의협도 건정심으로 넘어가면 더 낮아질 수가를 고려해 2012년에 건보공단과 합의를 한 적이 있다.
더욱이 돈줄을 정부가 쥐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수가 협상은 정해진 재정을 의협과 병협,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가 나누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이들 보건의료단체는 수가 협상에서 정부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의 수가를 확보해야 한다. 정부에 자칫 잘못 보이면 최악의 결과를 예상해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건보공단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이기적인 이익집단이라는 꼬리표가 생긴다. 2011년 병협이 2012년도 수가 협상에서 건보공단과 합의하지 못하자 8개의 건강보험 가입자단체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병협을 질타했다. 건보공단의 일방적 의견을 수용하면 수가 협상에 성실히 응한 것이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수가 협상에 불성실하게 응한 모습이 되는 좋은 예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