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애 과정 중 겪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동반되는 신체증상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처음 이별을 직감할 때 심신이 타들어가고, 헤어지자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슴이 찢어진다. 혼자 이별의 무게를 떠안고 끙끙댈 때는 마음이 시큰거리는가하면 마지막으로 진짜 이 관계가 끝났음을 받아들일 때의 먹먹한 느낌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단칼에 이별하지 못하기 때문에도 더 고통스럽다. 먼저 누군가가 관계를 내려놓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이미 관계는 이별에 들어선 거나 다름없지만 관계가 완전한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이래저래 부침을 겪는다. 좀처럼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불꽃은 피었다 사그라졌다 사람 헷갈리게 반복한다. 어떨 땐 만난 시간보다 헤어지는 과정의 시간이 더 긴 관계도 있다. 센 척, 약한 척, 괜찮은 척, 미친 척, 연기를 하면서 감정과잉이 되면서 우리는 상대를 매도하고 위로하며 오락가락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리기도 벅차다. 두 사람의 심리적, 육체적 거리조절은 혼란과 우왕좌왕 그 자체다.
이별을 지체시키는 핵심이유는 뭘까? 바로 덜 사랑한 자의 희망고문이다. 각자가 마음이 정리되는 타이밍이 다르다보니, 더 사랑한 사람이 먼저 앞당겨 마음정리를 할 수 있도록 덜 사랑한 사람이 도와줘야 하는데, 대신 그들은 의도치 않은 희망고문을 준다. 물론 덜 사랑한 사람은 그만큼 그 관계에 둔감하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선의나 예의가 희망고문으로 작용함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 보고 싶었어?'처럼 과거를 연상시키는 말투, 뜬금없는 '뭐해, 잘 있어?'같은 안부인사, 괜히 블로글에 의미심장한 댓글을 남기는가 하면 SNS에는 관심글 찍고 좋아요,를 누른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감상적이 되고 누군가는 그 감상을 받아내느라 호된 연기를 해야만 한다. 자칫 기대했다간 상처는 까진 데 또 까져서 만신창이가 된다. 파블로브의 개처럼 이제 상처의 피냄새를 알아버린 더 사랑한 자가 뒷걸음질치며 고깃덩어리에 반응하지 않게 될 때, 둘은 마침내 완전히 이별하게 된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