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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권기봉의 도시산책]<53>'넝마공동체' 사람들이 갈 곳은 어디?

▲ 개포동 넝마공동체



1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개포동 영동5교 밑을 지나다 보면 16개나 되는 컨테이너들이 쌓여있었다. 폐컨테이너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물을 보관해둔 컨테이너도 아니었다. 그곳은 60여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보금자리였다. 이른바 '넝마공동체'라 불리는, 강남과 송파 일대의 아파트 단지를 돌며 고물이나 헌옷을 모아 생활을 이어가는 도시 빈민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이곳에 넝마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해 일흔두 살인 빈민운동가 윤팔병씨가 도시빈민과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 만든 곳으로, 그 자신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있는 공간이다.

전남 함평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윤 씨였지만 위로 여섯 형제가 한국전쟁 때 부역자로 몰려 처형되거나 실종됐으며 일곱째 형은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스스로 생을 마쳤다. 그런 그의 가족에 평탄함이란 있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거리를 헤매며 구두닦이나 지게꾼, 찐빵장수, 권투선수 등 모든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야만 했다.

노점상인이나 거지들과 함께 생활하며 '더불어 사는 삶'에 눈을 뜬 것도 그때였다. 1970년대 부동산 투기를 위해 1년에도 몇 번씩 이사하는 사람들이 버리고 가는 가재도구나 책, 헌옷 등 '넝마'를 모아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한 공동체, 이른바 넝마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7㎞나 떨어진 사찰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고 구덩이를 파서 만든 공동 변소를 써야 하는 형편이었지만,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몸과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지난 26년 동안 이곳에서 자활 의지를 길러 나간 사람들만 300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젠 영동5교에 가도 넝마공동체를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말 화재 예방과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 해결을 이유로 강남구청이 강제 철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근처 탄천운동장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듯했으나 결국 거기에서도 쫓겨나고 만 넝마공동체 사람들이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은 과연 어디일까. 시민과 지자체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우리 사회의 또 한 구성원들이 한뎃바람을 맞으며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해야 할 형편에 있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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