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한다. 어느 새 서늘해진 공기와 접촉했을 때, 문득 높아진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 책상 위 달력이 마지막 분기를 향해 치닫는 것을 봤을 때 마음은 기억 속 어떤 사람을 향해 내달려간다. 세포는 의식보다 정직하고 이성보다 날카롭다. 가슴 한 켠에 새겨진 추억이 소중한 건 잊었던, 잃어버렸던 삶의 가치를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청명한 하늘처럼 맑고 깨끗했던 나를 되살려 놓는 시간, 가을은 그렇다.
A 회장은 수천 억 원의 매출을 내는 회사를 운영 중이다. 필자를 만날 때마다 짧지 않은 한숨을 내쉬곤 하는데 이유인 즉, 더 이상 팔 것이 없어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매출을 달성하는데 걸린 시간보다 그 매출에서 정체돼 있는 시간이 더 길고, 조금씩 하락하는 시간 역시 끝을 가늠할 수 없으니 당연하다. 그렇다고 한 순간 결심을 하고 회사의 시스템을 변경하거나 상품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하기도 어렵다. 제2의 도약을 위한 투자가 발생시킬 위험을 감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B 사장은 동 업계의 경영자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가 만든 제품은 디자인, 소재, 마감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다. 많은 돈을 R&D에 쏟아 붓고 있으며, 한국을 넘어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고자 노력하니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만 하다. 그렇다고 한숨이 적은 건 아니다. 멀지 않아 자신이 만든 제품과 브랜드를 시장이 알아 줄 것이라 믿었는데 그 기다림은 끝이 없다. 주변에서는 수준을 조금 만 낮추면 돈을 벌 것이라 말하지만 이제까지 가져왔던 신념과 태도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두 사람은 오래 전 자신의 곁을 떠났던 한 직원을 그리워하는 공통점을 가졌다. 규모만큼이나 지속 가능한 매출발생을 담보할 수 있는 상품과 조직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던 직원, 아무리 우수한 제품이라 해도 시장이 외면하는 것이라면 그 가치는 반 토막이라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주장했던 직원으로 경영자와는 상이한 방향성을 가졌던 동료를 아쉬워했다. 지금 주변에 남아 있는 직원은 경영자의 말 한 마디에 눈치를 살피고, 몸을 사리고, 입을 닫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인물들뿐이라는 하소연이다.
최근 한 골프용회사가 '챔피온은 바뀐다'는 외침과 함께 제품 광고를 하고 있다. 짧고 당연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내가 챔피온인 시간도 유효하고, 경쟁사가 챔피온인 시간도 유효하다. 언젠가 내려올 게 분명한 자리라면 그 자리에 다시 오르려 하기 보다 새로운 자리를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 욕심을 내는 것보다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택하는 게 경영자도 회사도 직원도 흥을 낼 수 있다.
/인터패션플래닝 박상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