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역사 앞을 지날 때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없던 동상을 하나 만날 수 있다.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다. 강 의사는 지난 1919년 9월초 옛 서울역 광장에서 새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인물이다.
비록 사이토 총독의 목숨까지 빼앗지는 못했지만 당시 강 의사의 의거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했다. 일본 경찰 등 37명을 폭사시키거나 다치게 하는 등의 성과만이 아니라 당시 강 의사의 나이가 64세였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항일 의거는 주로 혈기왕성한 20~30대 청년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강 의사의 의거는 환갑을 넘긴 노투사도 독립운동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9세기말 일제가 경인선을 놓은 이후 조선 침략, 나아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기능해온 옛 서울역은 늘 치열한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강 의사의 의거 6개월 전인 3·1운동 때에는 이곳에서 출발한 열차들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그 소식을 실어 날랐고, 해방 때에는 기쁨에 겨운 수많은 조선인들이 태극기를 휘날렸다.
지난 1960~70년대에는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젊은이들이 서울 땅에 발을 들여놓는 창구였고, 동시에 이들을 위해 곡식이며 온갖 먹거리를 싸들고 상경하는 우리의 어머니들을 맞이하던 역이었다. 1980년 '서울의 봄'과 87년 6월항쟁을 기억하는 이들은 옛 서울역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뜨거운 함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옛 서울역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옛 것과 어울리지 않는 새 역사와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애당초 그 자리의 주인과도 같았던 옛 서울역사는 거의 천덕구니 취급을 받고 있다. 역 광장과 그 주변에 몰려드는 노숙인들은 한국 사회의 그늘 그리고 양극화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울역을 단순히 철도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 아닌 오늘날의 한국이 있게 한 주요 현장이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강우규 의사의 동상 뿐이다. 뜨거운 역사의 현장치고는 참 쓸쓸한 풍경이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