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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석축만 남은 경복궁 자선당의 비밀



경복궁의 가장 안쪽, 사람들의 발걸음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석축 한 개가 우두커니 서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지난 1996년, 원래 자리에서 뜯겨져 일본으로 반출됐다 돌아온 '자선당' 석축이다. 이 땅을 떠난 지 근 80년 만의 일이었다.

목조 건축물은 해체한 뒤 재조립할 수 있기에 다른 곳으로 옮겨 짓는 경우가 더러 있다. 왕세자가 거처하며 학문과 수양을 하던 건물인 자선당의 경우엔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고 5년 정도 지났을 때 해체됐다. 시정 5년 기념, 즉 일제가 조선을 통치한 지 5년이 된 것을 기념해 연 '조선물산공진회'라는 이름의 박람회를 구실로 삼았다. 전시공간 마련 등을 이유로 자선당과 흥례문, 시강원 등 총 4000여 칸에 이르는 전각들을 헐어버린 것이다.

이때 헐린 건물 중 상당수는 서울 용산과 필동에 있던 일본 사찰이나 요정 등으로 팔려 나갔다. 일부는 바다 건너 일본으로도 반출됐다. 도쿄경제대학을 설립했을 정도로 대부호였던 오쿠라 기하치로에 의해 도쿄로 옮겨진 자선당이 대표적인 예다.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자신의 박물관이자 일본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오쿠라 슈코칸'으로 옮겨 부속 건물로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자선당의 거의 모든 부분이 불에 타고 만다. 남은 것은 석축뿐…. 그 후 70여 년 동안 방치돼 있다가 김정동 목원대 교수의 눈에 띄면서 경복궁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 많은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기는 했지만 자선당 석축이 입은 상처는 너무나 컸다. 화재 당시 고열에 노출되어 석질이 푸석푸석해진 데다 균열도 심하고 깨진 부분이 많았다. 훼손이 심한 나머지 1990년대 말 진행된 자선당 복원사업에도 활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엔 지금처럼 경복궁의 가장 안쪽,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된 곳 근처에 놓여졌다.

비바람에 풍화되어 먼지가 될 때까지 남아 있겠다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선당 석축. 기둥이나 벽, 지붕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 처연하기만 하지만, 그것이 주는 역사의 울림은 더 없이 깊고 강렬하다./'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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