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시장의 핵심은 여성이었다. 여성소비자는 자동차, 전자, IT 등 남성소비시장이라 여겨진 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서도 빠르게 영향력을 넓혔다. 연인이나 남편에게 생일선물로 수입고가가방 대신 태블릿PC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은 여성을 사로잡기 위한 마케팅과 홍보에 한층 더 집중했다. 그러나 기업은 알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마케팅 비용 만큼 매출 효과가 일어나지 않았다. 마케팅 전략이나 전술의 문제일까.
남자 연예인이 화장품 광고를 하는 것은 흔해졌다. 가공식품 광고에서도 남자의 친절한 안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도 예외가 아니다. 세련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남자가 제품을 선보인다. 마치 자신의 연인을 타인 앞에서 자랑스러워하듯 뿌듯한 얼굴로. 핵심은 이런 광고의 흐름이 여자를 향한 것만이 아니란 점이다. 남성소비자는 더 이상 여자의 손에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선택을 맡기지 않는다.
모 화장품 브랜드에서 제품 구매자에게 모델(남자) A의 화보를 나눠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A를 좋아하는 여성소비자의 심리에 천착한, 여성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해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선물해 줄 것이란 기대에 근거한 행사다. 하지만 요즘 남자는 선물 받는 화장품을 액면 그대로 환영하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과 습관, 혹은 기대에 적합한 선물이 아니라면 기꺼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다. 현명한 여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성소비자가 제품과 서비스의 선택을 여자에게 의존했던 것은 구매의사결정에 대한 자신감 부족 때문이 아니라 필요성의 결여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스로 결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남자의 생활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다르다. 사회는 남자에게 지식, 경제력, 육체적 기준을 넘어서 고운 피부, 부드러운 배려, 자상한 보살핌과 같은 감성적 기준을 요구한다. 즉, 남자 스스로 소비를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이제 남성은 소비시장에서 또 하나의 주체로 부상했다. 여자를 위해, 가족을 위해 지갑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지갑을 여는 존재로 거듭났다. 남성 전용 카페나 서비스가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당연하다 믿고 있던 남자의 본심과 현실을 점검해야 할 때다.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