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빌린다'는 표현이 있다. 이 말에서 손은 '일손'을 뜻한다. 우리 내 조상은 손을 빌리는 것에 익숙했다. 농번기 때는 물론이고, 가옥이나 축사를 수리하는 일에서부터 상을 치르는 대소사 때도 이웃의 손을 빌리고 빌려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협업의 효과는 언제나 우수했고, 협업으로 인해 형성된 관계는 또 다른 결속력으로 이어졌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손을 주고받는 집단의 세력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주)성보자야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패션 제품의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브랜드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30년째 하고 있다. 프라다·갭·C.P COMPANY·스톤 아일랜드 등 고가 제품을 취급하는데, 봉제와 가공은 물론 염색·워싱(원단의 질감이나 색상의 톤을 변화시키는 작업)까지 원스톱(One Stop)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재 생산업체 중 고객의 요구 전부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회사에는 3000명에 달하는 앳된 여공들이 근무한다. 이들은 거대한 생산라인에 줄맞춰 앉아 작은 손으로 제품의 완성에 기여를 한다. 거의 대부분은 손을 쓴다. 한때 이 손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에 있었다. 방직시장은 물론 완제품시장에서 엄청난 경쟁력을 발휘하며 산업을 이끌고 국가경제를 키웠다. 그런데 이 손이 모두 해외로 넘어갔다. 손 안에 산업 주도권을 움켜쥔 채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인도네시아로 이동했다.
유명 브랜드는 생산업체에게 엄격한 품질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요구의 대부분은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대량 생산을 위한 기본 공정뿐이다. 즉 모든 산업에서 상품의 '가치=손'이 되며, 사람은 결코 노동력이 입혀진 상품의 가치를 포기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는 섬유패션 산업에서 뗀 손을 자동차, 전자로 가져왔다. 문제는 한류 바람이 패션에 'Made in KOREA'란 숙제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손이 없다.
지금 우리의 손은 땀을 흘리는 걸 거부한다. 인내하며 제품 안에 열정을 심는 걸 경멸한다. 덕분에 수많은 젊은 손이, 기술을 다룰 줄 아는 기술자가 쉬고 있다. 다시 한번 기꺼이 손을 빌리고, 빌려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거기엔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