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밀라노가구박람회는 스칸디나비아반도 디자이너들의 무대였다. 가구의 실용성과 심미성을 장인정신과 기술로 표현된 제품들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브랜드마다 디자인 철학을 명확하게 담아냈는데, 놀랍게도 디자인에서 오는 느낌이 중복되는 경우가 없었다. 유사성이라고는 '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구나'라는 느낌뿐이었다. 전시회 홍보담당자는 자신의 브랜드는 물론 동일 공간에 참가하고 있는 브랜드의 디자인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얼마 전 패션브랜드 일부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해외 전시 프로그램 참여에 이의를 제기 했다. 해외 전시장에서 '한국'이란 이름으로 다른 브랜드와 나란히 전시되기 싫다는 게 이유였다. 자신만의 고유한 공간을 제공해 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도대체 왜 그러냐는 질문에 당사자는 입을 닫았다. 논리적 설명이나 설득은 고사하고, 정체 모를 표정과 분위기로 전시회 참가 작파를 주장했다. 흡사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았다. 같은 시간 브라질 브랜드들은 돈을 모아서 국가연합 공간 구성에 힘을 모았다.
디자이너와의 협업이 가장 힘든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패션산업에서 디자이너는 '선생님'이고 그 외 패션제품에 관계된 사람들은 선생님을 당연히 공경하고 모셔야 할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 반드시 우대를 받아야 한다. 이 분위기는 패션과 타업종과의 협업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일반 기업은 디자인을 제품 생산 과정에 속한 하나의 요소로 인식한다.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 있고 얼굴에 도도함이 넘치는 선생님을 결코 정하지 않는다.
패션디자이너 만큼 선생님이란 극존칭을 받는 디자이너가 없다. 공공기관에서는 신진디자이너발굴을 위한 공모전 입상자에게조차 선생님이란 호칭을 쓴다. 좋다. 창의적 행위의 가치를 십분 인정해 극존칭으로 대하자. 그런데, 전시장에서 백화점에서 경쟁브랜드 제품과 디자인을 나란하게 펼칠 수 없는 그 마음은 어쩔 것인가. 디자인에서 선생님과 선생님의 차이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없는 현실은 어떻게 할까. 선생님은 외롭다. 명성이 조금만 잦아져도 주위가 휑하다.
패션디자이너께 선생님이란 호칭을 버리라 청하고 싶다. 호칭을 버려도 제3자의 존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진심을 담아 갈채를 보낼 지도 모른다. You are the designer !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