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펑크(PUNK)' 전시회가 열렸다. 펑크는 197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다소 과격하고 정열적인 락의 장르이자, 동시대 패션 트렌드였다. 영어사전을 빌리면 '불량한 남자'라는 의미가 있을 만큼 도드라지는 형태와 내용을 갖춘 문화코드인데, 이 주제어 아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펑크를 시대적 트렌드로 경험했던 노년층에서부터 역사의 한 장면을 배우려는 10대까지 한 자리에 모여 하나의 문화를 공유한 것이다.
같은 시간, 20분 거리에 위치한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에서는 제인 알렉산더(Jane Alexander)의 전시회가 열렸다. 1800년에 지어진 유적 안에 모던 아트(Modern Art)의 새 지평을 연 작가의 작품이 들어앉은 셈이었다. 대성당 안의 공간에 자리잡은 작품들은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파격적이고 강렬했다. 얼핏 보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은 작품들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방문객은 이 거대한 성당을 어떻게 지었을까에서 모던 아트란 이런 것이구나까지 느낄 수 밖에 없다.
펑크 전시회에서는 펑크와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브랜드의 컬렉션이 넘쳐났다. 버버리, 샤넬, 프라다, 지방시 등 현존하는 최고 브랜드 역시 시대 트렌드에 기꺼이 동참했었다. 브랜드로서 시대와 정신의 흐름에 함께했던 흔적에 가슴이 뭉클했다. 또, 각자의 컨셉트가 고유한 패션브랜드가 펑크라는 트렌드 아래 저마다의 스타일을 풀어낸 것에는 감탄이 절로 났다. 우리는 패션시장의 공급자와 수요자, 그리고 매개자가 한 번이라도 시대와 정신을 공유했던 적이 있었던가.
서울에는 아직 적지 않은 한옥이 남아 있다. 그럭저럭 집촌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눈에 띈다. 집주인들은 하루빨리 개발제한이 풀려 재건축이 가능해지기를 기다릴 것이다. 행정기관은 골치 아픈 구획 정리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옥을 살리고, 한옥의 공간을 현대사회 혹은 문화와 소통하게 만드는 장소로 쓰면 어떨까 하는 꿈 같은 상상을 해봤다. 삼계탕, 한식, 분식, 패션잡화 상점으로의 변모는 이제 그만이기를.
메트로폴리탄뮤지엄도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도 시대, 사람과 소통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점에 주목하자. 관광객 유치, 기념품 판매를 위한 아이디어를 낸 게 아니다. 타인과 소통하고, 시대와 공감하고, 문화와 공유하는 디자인은 상상만으로도 흥분된다.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