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회사 내 영화모임을 맡았다. 페이스북에 그룹을 만들었는데 소개용으로 쓸 사진이 없어 난감했다. 모임에서 사진을 찍으려 마음먹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모임 때마다 누군가는 꼭 빠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A는 회원들에게 사진을 요청했다. 반나절 만에 모아진 사진을 적당히 배열을 하고 공간을 만든 뒤 자신의 얼굴을 넣었다. 사진의 배경으로 첫 모임 때 찍었던 포스터를 삽입하니까 완벽한 그룹 소개 사진이 됐다.
필자는 디지털카메라에 넣을 메모리카드를 사려 공항 면세점에 들렀다. 해당 브랜드 매장에 갔는데 4년 전 모델에 맞는 메모리카드는 없었다. 직원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사 브랜드 카메라에 쓰이는 메모리카드는 세 가지 밖에 없다며 필자를 의심했다. 카메라를 들고 간 것이 아니었으니 할 말은 없었다. 그냥 나올까 하다가 필자의 카메라가 너무 오래됐나 싶은 생각이 들어 신제품을 둘러봤다. 신제품의 장점을 강조하는 직원의 요지는 단 하나, 셀카기능이었다.
멋진 사진은 내가 누군가를, 어떤 것인가를 담아 낸 것이다. 그 멋은 구도를 잘 잡거나 노출의 정도를 잘 맞춘 기술적 완성도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촬영자의 시선이나 마음이 담겨 드러나는 관찰자의 멋도 만만치 않다. 사진 원본은 물론이거니와 포토샵을 이용한 보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원하는 만큼 사진에 담지 못했을 때 이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멋으로 치환된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돼 사진촬영은 물론 인화, 보정마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됐다. 덕분에 웹에는 이미지 컨텐츠가 쌓이고, 사진이라는 명사를 대신해 이미지라는 외래어가 통용되고 있다. 사진과 이미지는 두 가지를 기준으로 구분하고 싶다. 첫째, 촬영자가 피사체에 대해 3인칭 시점을 가졌는가. 둘째, 촬영 순간에 대상을 향해 품은 마음이 있었는가. 무생물에도 사람이 가진 생각 혹은 마음의 파장이 담겨진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당신이 가진 사진 폴더 안에 설렘을 주는 이미지가 하나도 없는 건 당연하다. 사진을 찍지 않고 숫자로 나열된 데이터만 가뒀으니까. 셀카 대신 누군가의 손에 내 모습을 맡기자. 그리고, 내 마음을 담아 어떤 이의 한 순간을 맡아보자.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