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값 아끼려 아예 점심 싸들고 출근 알뜰파 증가
10여분 뚝딱 밥먹고 영어 등 열공모드 실속도 챙겨
지난 21일 찾은 서울 대방동 오픈마켓 11번가 본사. 낮 12시가 되자 도시락 통을 챙겨든 직원들이 하나 둘 3층 회의실로 모였다. 바로 옆 탕비실에 비치된 전자레인지 앞은 도시락 밥을 데우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직장인들이 다시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기름기'가 쏙 빠졌다. 볕 좋은 날 회사 인근 공원에서 '광합성'을 즐기며 먹던 낭만 도시락은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올 봄엔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는 짠돌이 의지와 자기계발·몸짱 욕심을 꾹꾹 눌러 담은 '실속형 도시락'이 대세다.
자취 생활 4년차인 박지나(28·여)씨는 올 초부터 '도시락족'으로 변신했다.
한 끼 7000~8000원 하는 점심값이 부담스러워 일주일에 3번 정도 도시락을 싸오다 보니 한 달에 10만원 절약은 문제없다. 처음엔 혼자인 날이 많았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4~5명이 함께 먹는다. 박씨는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면서 생활비도 굳었지만 타 부서원들과 반찬을 나누며 소통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고 말했다.
올가을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는 예비 신랑 신명수(32·남)씨는 요즘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신씨는 "밥집에서 후배들의 시선이 비싼 메뉴에 꽂힐 때면 간이 콩알만 해진다"면서 "편의점에선 3000원이면 한 끼를 때울 수 있어 동료들과 자주 애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편의점 CU(씨유)가 이달 1일부터 22일까지 도시락 매출을 집계한 결과 1년 전에 비해 65.7%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다이어트·자기계발… 도시락 싸오는 이유도 가지가지
한 끼 밥값을 줄여보려고 도시락을 싸 다니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그저 궁상스럽게만 보이진 않는다. 점심 시간을 쪼개 자기 계발이나 운동에 활용하는 '열공족'들이 있어서다.
10년차 직장인 이규석(38·남) 차장은 도시락으로 15분 만에 점심을 해결하고 자리에 앉아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이 차장은 "평소 영어 공부할 시간이 없어 점심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다"며 "도시락을 먹으니 음식점에서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돼 정말 좋다"며 웃었다.
올여름 비키니 수영복에 도전하려는 김혜나(26·여)씨는 매일 아침 해독주스와 샐러드 도시락을 챙긴다. 김씨는 맛집을 찾아 나서는 동료들 앞에서 주섬주섬 도시락을 챙기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다. 두 달 후면 S라인 몸매와 건강을 찾을 생각에 즐겁기만 하다.
CU 간편식품팀 황지선MD는 "과시적 소비 대신 실리를 따지는 3040 직장인들이 도시락 문화를 이끌면서 도시락은 단순히 불황기 '끼니 때우기' 수단을 넘어 합리적 소비의 또 다른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당분간 도시락족 열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지원기자 pjw@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