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는 싹을 틔운 후 더디게 자라 사람들의 입을 궁금하게 만든다. 봄철 한바탕 비를 맞고 나면 웃자라는데, 거짓말처럼 쑥쑥 자라 부드러워져 훌륭한 먹거리로 식탁에 오른다. 한철에 아홉 번이나 캘 수 있을 정도라니 사랑 받아 마땅하다. 제주사람은 이를 두고 고사리비라는 애칭을 붙였다. 가족과 손님 모두를 기쁘게 하니 그 쓰임이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산에는 바람이 드는 자리가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뙤약볕의 날에도 등산객을 쉬게 해주는, 청량감을 주는 바람이 흐르는 곳이다. 산을 벗삼은 이들 사이에서는 바람이 머무는 자리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작은 숲 어디쯤인데, 바람이 숲 안을 휘돌아 지친 등산객의 식사와 휴식을 도와주는 곳이 있다는 주장이다. 산행을 벗삼아 사는 이들에게 바람이 드는 자리와 바람이 머무는 자리는 그들만의 오아시스다.
우리는 오랜 시간 같은 일을 반복해 얻은 경험으로부터 발견한 어떤 것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논리적 증명이나 과학적 해석이 어렵지만 당연히 그렇다고 믿고, 믿는 사람들에게 공유해 줄 수 있는 가치 또는 에너지다. 하지만 경험치의 숙성은 내재화하기가 어렵다. 타인과 사회로부터 일정 수준 격리된 생각, 행동양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남이 알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꾸준함이란 고독하다.
중국시장에 대한 환상을 경험한 많은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로 이동 중이다.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생산기지로서의 경쟁력과 장점을 이해해 온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현지의 특성을 헤아린 여러 가지 정의를 품고 있다. 인력의 특성, 물류의 핵심, 재무의 운영 등 사업전반에 걸친 차별화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최소한 고사리비, 바람이 머무는 자리 정도는 판단하고 말할 수 있다.
좋다. 더 좋은 여건이 있다 판단되면 옮기는 게 맞다. 그런데 경험치를 충분히 가진 뒤에 결과를 내야 한다는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하겠다. 타인이 일궈놓은 터전에 무임승차하는 것보다 나의 성숙함을 타인에게 공유시킬 수 있을 때 성공확률은 높아진다. 더 이상 무임승차는 없다.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