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고양이(Luwak)의 배설물로 만든 '루왁커피'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필자에게 루왁커피에 대해 묻는 많은 이들은 영화 '버킷리스트'를 보고 알게 됐다고 한다. 맛을 보기도 전에 영화 속의 대화로 명품커피가 돼버린 셈이다. 그러나 루왁커피의 시작은 결코 낭만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네덜란드가 세계 커피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18~19세기, 커피는 주로 수마트라·자바 등 인도네시아에 커피농장에서 공급됐다. 농장에선 당시 황금작물인 커피체리를 함부로 따거나 커피를 만들어 먹는 것은 아주 엄격히 제한했다고 한다. 그러나 커피 맛에 매료된 커피농장 인부들은 농장 주위 야생의 루왁이 커피체리를 좋아해 밤중에 커피나무에 올라 몰래 따 먹는다는 것과 이들의 배설물 속에는 소화가 되지 않은 껍질(파치먼트)들이 가득히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일념으로 루왁 똥들을 수거해 흐르는 물에 씻어 말려 색깔이 조금은 다른 생두를 얻게 된다. 지저분한 과정을 거쳤지만 이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커피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루왁의 커피 맛은 쓴 맛이 많이 사라진 부드러우며 독특한 맛으로 알려져 있는데 커피전문가들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루왁 커피가 인기를 얻으면서 루왁을 사육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무리를 해 루왁커피를 만드는 것은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두가격이 1kg당 700달러까지 나간다.
최근 남미 페루에서는 너구리과 동물에 커피체리를 먹여 루왁과 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수확해 비싸게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코스타리카에서는 박쥐가 먹다 남겨 놓아 커피나무에 달려있는 파치먼트만 채취한 소위 박쥐커피를 팔고 있다. 지난해 태국에서는 코끼리에 커피체리를 먹이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코끼리 커피를 70kg나 만들어 아주 비싼 값(생두 1kg에 1100달러)에 모두 팔았고 올해는 생산량을 7배나 늘릴 것이라 한다.
이러다가는 마지막 보루도 무너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다. 중국에서 간수들에게 커피체리를 먹이고 루왁 스타일의 '호모 사피엔스 커피'를 만든다는 괴소문까지 들렸다. 흥미로운 건 코끼리표 루왁 커피가 1100달러나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표 커피 가격은 고작 30달러라는 점이다. 만물의 영장도 자연의 산물 앞에선 기를 못 펴는가 보다. /커피전문가·영상의학과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