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해외건설용역을 처음으로 수주한 건 1965년도였다. 주인공은 현대건설이었고, 태국에 고속도로를 건설해 주는 대가로 받은 사업비는 540만 달러였다.
이때부터 외화벌이에 대한 눈이 트인 셈이다. 이후 중동건설 붐이 일어난 것은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가 일어난 뒤였다. 한국기업들은 기후, 언어, 자재 등 사업에 필요한 제반 조건이 다르다는 장애를 극복하며 한류의 씨앗을 뿌리는데 성공했다. 한국은 이 기세를 한강의 남과 북을 잇는 '한강의 기적'으로 가져왔다.
두바이와 카타르가 세계적 기업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7만 달러가 넘는 GNI(국민총소득)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경제적 풍요가 보장됐지만 사막이란 천형의 환경 탓에 쾌적하지 못한 일상에 놓인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과 양질의 상품을 팔고 싶어한다.
중동인의 활동을 더 편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패션, 척박한 사막기후로부터 신체를 보호해 주는 뷰티와 건강 부문의 제품과 서비스는 단연 인기다. 특히 한국 기업은 중동건설이란 히스토리와 프리미엄으로 환영을 받는다.
두바이에 코리아타운 프로젝트가 논의되고 있다. 더불어 한국 명품브랜드관 건립을 준비 중인 기업도 있고, 건설사업 자체에 참여하는 설계나 시공사도 많다. 제2의 중동 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한 번 오일달러를 벌어서 또 다른 한강의 기적에 필요한 밑천으로 삼을 수 있을까? 우리는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앞서 말했던 현대건설은 70년대 중동시장을 위해 사내에 아랍어 강좌를 개설했다. 중동에 대한 분석 또한 태국 고속도로 사업에서 경험을 근간으로 10년 이상 반복했다.
A사는 한지를 이용해 통풍과 디자인, 감촉이 우수한 히잡을 개발했다. 고온에 따른 생체리듬저하를 막아주는 수소수를 개발한 B사도 있다.
C사의 경우 겉보기와 달리 화려한 색상을 선호하는 아랍인을 위해 나염기계와 기술을 업그레이드했다. 제조시설을 사막 한가운데로 옮기기 위해 친환경 공법을 연구한 D사는 아랍왕족으로부터 친견의 영광을 누렸다. 이들은 시장을 봤고, 준비했고, 기회를 맞았다. 남이 이룬 성과에 무임승차하는 법이 없다.
우리는 한국인이다. 여러분의 근무지는 한국기업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오랜 세월 세계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그 시간을 헛되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중동에 한국의 혼을 심어 오아시스의 기적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